부러우면 지는거다 비교하면 슬픈거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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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호 34면

어느 날 갑자기 교수가 되어 돌아온 먼 친구 소식은 나를 슬프게 한다. 내 동창이었을 때 그는 학구열로 빛나는 눈동자를 가지지 않았고 나보다 학점도 좋지 않았다. 졸업하자마자 직장을 구한 나는 대학원에 가겠다는 그를 속으로 ‘그래 나처럼 취직할 재주가 없다면’이라고 은근히 가련하다는 비웃음의 눈길을 보내지는 않았던가. 친구들을 불러 자랑스럽게 한턱내면서 “걔 요새 뭐한대?” 물어보면 “글쎄 외국 어디에서 학위 한다던데 잘 안되나봐”라는 답변을 들었을 때 괜한 걱정의 눈초리로 “아휴 빨리 끝내야 할 텐데”하고 맘에 없는 소리도 했던 듯 하고.

이윤정의 내맘대로 리스트: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그런데 내가 애 낳고 직장에서 허덕대다 허송세월한 몇 년 사이 그 아이는 박사학위뿐 아니라 미국 교수직까지 가지고 나타났다. 귀국 환영의 자리에서 마주친 그 아이의 눈빛은 익숙했다. 이십 년 전쯤 내가 그 친구에게 던진 바로 그것과 거의 다르지 않았으니. 40대에 벌써 노후 걱정 연금 계산에 퇴직 후 필요한 최소 생활비를 이야기하며 한숨을 내쉬는 데 그 친구는 65세가 정년이며 종신직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그 변신을 축하하지만 내 마음이 슬픈 건 어쩔 수 없다.

남편이 대기업 임원이 되었다며 한턱 내겠다고 부르는 친구의 전화도 나를 슬프게 한다. 대학원이라도 가는 동창은 그래도 좀 낫지. 멀쩡하게 명문대를 나와서 조신한 현모양처가 되겠다며 일찌감치 청첩장을 돌리던 그때. 나는 또 비슷한 눈빛을 던졌으리라. 나는 결코 그 아이가 들고 나온 수백만 원짜리 명품 가방과 명품 구두,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남편의 억대 연봉이 절대 부럽지 않다고 다짐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 신고 나온 내 하이힐의 굽은 보도블록 틈에 끼어 가죽이 까인 채 너덜너덜하고 친구의 윤기나는 캐시미어 코트와 보푸라기가 대롱대롱 매달린 내 코트는 어찌 그리 비교가 되는지. “그래도 너는 어렸을 때부터 똑똑하고 재주가 많더니 아직까지 일을 하고 있구나”라는 친구의 말은 백 퍼센트 진심으로만 꼭꼭 채워져 있는 말이라고 믿는다. 그런 믿음만이 지독한 슬픔의 우물에서 나를 단단히 지탱하게 해주는 동아줄이다.

아이의 같은 반 학부형 모임을 나가서 우리 반의 우등생 엄마를 만났을 때 나는 또 슬퍼진다. “아휴 또 1등을 했어요? OO이는 정말 천재인가 봐요” 맘에도 없는 축하인사를 날리지만 속은 급성 위장병이라도 걸린 것 마냥 마구 쓰려온다. 한 때 아이가 어렸을 때 나도 저런 소리 많이 들어보지 않았던가. 왜 아이들은 어릴 때만 천재여서 부모들을 좌절시키는가. 아무리 아들과 같이 밤을 새면서 시험 공부를 했어도 도저히 그 아이는 따라잡을 수 없다는 냉정한 현실을 깨달아야 할 때 세상은 더할 나위 없이 절망적이다.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도 왜 그렇게 재주가 많은지. 누구는 디베이트 대회를 나가 상을 받았다고 누구는 음악 대회에 나가 상을 받아왔단다. 응급실이라도 가야 할 것같은 쓰린 속을 간신히 부여잡고 있는데 기껏 칭찬이라고 날아오는 말이 마지막 KO를 위한 카운터 펀치 같기만 하다. “XX이는 어째 그리 성격이 좋아요. 맨날 애들한테 먹을 거 사주고. 해달라는 대로 다해준다네요.” 왜 대학에는 성격 특별 전형은 없는 거냐.

터덜 터덜 진이 빠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 겨울바람에 뒹구는 낙엽 몇 개와 그 속에 말라붙어 죽은 딱정벌레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 생각해보니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의 한 모퉁이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볕이 떨어져 있을 때…동물원에 갇힌 호랑이의 불안 초조”라는 안톤 슈낙의 글을 보면서 애써 슬픈 표정을 지었던 그 순진했던 시절도 있었다. 한 편의 시, 한 곡의 노래와 영화, 그리고 낙엽과 햇빛이 나를 진짜로 슬프게 했던 그때. 그러니 돌이켜 보면 친구의 출세와 부유함. 자식자랑 같은 것 따위로나 슬퍼하고 있는 나 자신의 한심함. 그것이야말로 나를 진짜로 슬프게 해야 할 것 같다.

이윤정 칼럼니스트. 일간지 기자 출신으로 대중문화와 미디어에 관한 비평 활동을 하고 있으며 중앙SUNDAY와 창간부터 인연을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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