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고차, 가짜 휘발유로 골병|울산에서 서울까지 추적 취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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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이동사회부=정순균·최재영 기자】자동차 공장에서 출고돼 차주 손에 인도되는 새 승용차의 상당부분이 운송도중 가짜 휘발유를 사용, 엔진과 연료라인 등 주요기관이 크게 손상되고 수명단축과 잦은 고장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공장에서 도착지까지 운송을 의뢰 받은 운전사들 가운데 일부가 운송료를 줄여 차액을 챙기기 위해 값비싼 휘발유대신 가짜 휘발유를 사용하기 때문인데 운전사들은 고속도로 통행료를 챙기기 위해 울산∼서울간 일부구간을 구 도로로 주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공장과 서울간의 구 도로 중간지점에는 출고되는 새 차를 상대로 하는 가짜 휘발유 주유소가 버젓이 성업중이다.

<현장>
본사 취재팀이 현장을 추적한 것은 7월29일 상오 9시.
H자동차 울산 공장에서 현지 경찰서장 발행「임시 51228호」번호판을 단 스텔라 승용차가 갓 출고되어 서울로 출발했다.
운전사는 40대 초반. 승용차는 고속도로를 타고 서대구를 지나 상주방향 구 도로인 국도로 접어들었다.
상오 11시, 차는 상주군 상주읍 낙양동 석유판매점 서부상사앞 20여평쯤 되는 빈터에 들어섰다. 5분 간격으로 12대의 새 스텔라와 포니 승용차들이 속속 도착했다. 차량번호는 모두 임시판을 단 51570(흰색) 50957(아이버리) 51204(회색) 51228·51578(검정색) 51352·50992·50528(흰색)호 등이었다.
30대 부부와 50대 점원 등 3명은 부지런히 플래스틱통과 1.8ℓ이 병에 담은 가짜휘발유를 날라다 주임하기 시작했다.
본사 취재팀도 중간에서 휘발유가 떨어졌다며 1.8ℓ들이 한 병을 샀다. 전문가의 분석 결과 벤젠과 톨루엔 등 화공약품으로 만든 가짜휘발유임이 확인됐다.
가격은 l.8ℓ들이 한번에 7백50원. 진짜의 3분의l값이다. 8병(6천원)을 넣는 것을 확인했다.
주유를 마친 차들은 문경∼충주∼이천∼성남의 국도를 거쳐 서울시내로 들어섰다. 평균시속 1백㎞.

<원인>
차주는 새 차를 살 때 서울의 자기 집이나 직장에까지 차를 수송해주는 조건으로 스텔라의 경우 운송비 6만원, 포니는 4만5천원을 지불한다. 새 차 출고 때 공장 측은 20ℓ의 기름을 서비스하고 대리 운전사로 하여금 서울까지 운송토록하며 모든 책임은 차량계약 세일즈맨이 지도록 되어 있다.
출고 의뢰를 받은 운전사들은 국도를 이용, 5천원의 고속도로 통행료를 받고 서울까지 드는 진짜 휘발유 25ℓ(1만6천7백원)대신 가짜 휘발유로 1만여원을 벌어 모두 1만5천여원의 수입을 올린다는 것이다.
운전사 김모씨(35·서울 방학동)는『새 차에 가짜 휘발유를 사용한 것은 잘못인줄 알지만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는 할 수 없다』며『공개된 비밀』이라고 밝혔다.
이들 운전사는 주로 서울 종로3가 일대 시트커버 상사들로부터 출고를 의뢰 받는다.
따라서『종로 3가∼비원일대 시트커바 상사에 모여드는 H자동차의 새 승용차 중 상당수는 가짜 휘발유로 서울까지 운송돼온 차량들』이라고 운전사 이모씨(43·서울 석환동)는 말했다.
이들 커버상사들에 자동차 출고증을 넘겨주는 사람은 바로 자동차 회사의 판매사원들.
이들은『고객편의를 위해 자동차 인도까지 책임진다』는 구실로 고객들로부터 출고증을 넘겨 받은 후『시트커버 설치 이익금 중 15∼20%를 사례비로 받는다』는 조건으로 커버상들에게 출고증을 넘겨주고 있다.
특히 판매사원들 중 일부는 고객으로부터 받은 출고 비용 중 1만여원씩을 떼고 넘겨주어 이들 커버상들이 부담하기도 한다는 것.
이 때문에 출고의뢰를 받은 운전사들은 부족액만큼의 이익을 보충하기 위해 가짜 휘발유를 사용하고 국도를 이용, 1백∼1백20㎞로 과속운행을 해, 사고위험과 승용차의 엔진에 손상을 주고있다.

<엔진손상>
차량전문가들은 가짜 휘발유를 넣고 과속으로 1백㎞이상 주행하면 엔진의 시동이 잘 안걸리고 피스톤 부문에 카본이 축적되고 정상적인 엔진출력을 낼 수 없게 되며 부작용이 뒤따를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H자동차 서비스 김달호씨(정비부)는『새 차는 엔진에 무리를 주지 않기 위해 80㎞이상 주행하지 않는 것이 상식인데 가짜 휘발유에 과속은 우유를 먹여야할 어린 아기에게 꽁보리밤을 먹이고 억지로 끌고 가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H자동자 울산공장에서 하루 출고되는 승용차는 2백여대(택시 포함)인데 이중 50%가 서울로 운송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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