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화 육사졸생들(229)비둘기부대 결단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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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비둘기부대 장병들은 작년1월8일부터 29일까지 각 단위부대별로 1단계 교육을 받았다.
육군경비대대는 9861부대에서, 해병대는 포항, 해군은 진해기지에서, 그리고 육군공병대대는 그의 모체부대에서 정신훈련과 사격훈련을 실시했다.
이훈련이 끝나자 단위부대는 경기도가평군하면현리로 집결, 2윌2일부터 「비둘기작전」 이라고 불렀던 대게릴라훈련에 들어갔다.
우리가 비전투부대를 파병한다고 했지만 베트콩이 우리를 그렇게 대접(?) 할리가 만무했다.
그래서 나는 자체안전을 위해 경비대대뿐 아니라 공병·수송·본부근무대 할것없이 전원특등사수를 목표로 사격훈련을 실시토록 조문환장군에게 당부했으며 특히 야간기습에 대비, 야간사격훈련을 집중적으로 시키도록 했었다.
또 정글지대를 누비는데 필요한 장인한 체력을 단면시키기 위해 완전무장한체 산을 타는 훈련과 모래주머니를 발목에 매달고 달리는 훈련도 아울러 실시했다.
부대편성 자체가 자원제여서인지 장병들은 한마디의 불평불만없이 훈련에 열심이었다.
심지어 운전병과 위생병들에게도 유격훈련을 실시하면서『땀을 흘리는자만이 월남에서 살아남을수 있다』 고 강조했었다.
2윌중순에는 오끼나와 주둔 미제1공수특전단소속「뉴린·헤퍼세트」소령이 이끄는 특수전교관들을 초빙, 그들이 월남전에서 체험한것을 토대로 교육을 실시했다.
미군 특전요원들에 의하면 베트콩은 기습을 하기전에 반드시 충분한 사전정찰을 한다음 공격목표를 모형으로 만들어놓고 공격연습까지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장병들에게사주방어개념과 지뢰매설방법등을 특별히 교육시켰다.
당시 비둘기부대가 훈련장으로 사용했던 부대의 책임자는 김재규장군이었으나 나는 조문환장군과 육사동기생(7기특별) 인 인근사단의 이준학장군 (소장예편·태아산업사장) 에게 장비지원 및 인원편성을 맡도록했었다.
조장군과 이장군은 동기생중에서도 가장 절친한 사이였다.
그래서 이장군은 자기부대를 비우다시피하면서 비둘기부대 훈련장까지 와서 조장군을 도와주었다.
이장군은 자신이 사용하던 야영훈련 지휘차까지 조장군에게 빌려주어 조장군은 차속에서 침식을 하면서 부대훈련을 지휘했다.
비둘기부대 장병들은 수시로 신원조사와 신체검사를 해서 결격사유가 발견되면 원대복귀시켰다.
2월5일 하오2시 육군제9861부대 연병장에서 역사적인 비둘기부대 결단식이 거행되었다.
육군군악대의 주악이 눈덮인 산악지대예 울려퍼지자 김성은국방장관·김종오합창의장·3군참모총장과 해병대사령관, 그리고 「하우즈」 유엔군사령관의 열병이 시작되었다.
이어 김성은국방장관은 조문환장군에게 부대기를 수여하고 1천9백84명의 전장병에게 박정희대통령이 하사한 은팔찌와 국산라이터 1개씩을 전달했다.
김장관은 훈시를 통해 『장병 여러분은 대한민국의 대표이자 자유우방전우의 귀감이 되어 부하된 임무를 충실히 이행함으로써 대한 남아의 호고한 기상을 역사에 길이 남겨주기바란다』 고 말했으며 조단장은 답사를 통해 『비록 비전투부대이지만 유적전이 벌어지는 곳에서 근무하는 동안 자체안전을 위해 모든 대책을 강구하여 베트남의 위기를 구출하는데 전력을 다 하겠다』 고 말했다.
내옆에 서서 결단식을 지켜보고있던 「하우즈」 대장은 『비둘기부대가 월남에 가자마자 베트콩에게 호되게 공격을 받아도 곤란하지만 베트콩의 공격을 전혀 받지 않아도 곤란하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처음부터 베트콩에게 얻어맞으면 사기가 꺾여 임무수행을 하는데 어려움이 많을것이며 한번도 공격을 받지 않으면 너무 방심한 나머지 얼마안가서 엄청난 댓가를 치르게 될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던것같다.
이날따라 중부산악 지대의 기온이 급강하, 영하11도를 기록했던 것으로기억된다.
나는 사령부로 돌아오는 지프속에서 제발 한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1년후에 다시 이 연병장에서 해단식을 갖게해 달라고 빌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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