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파일] 장애인 영화제 개막작 '새드무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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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제목에 대한 강박감이 컸던 탓일까. 연인.모자(母子) 등 네 쌍의 사랑과 이별을 그린 '새드무비'(20일 개봉.감독 권종관)는 제목이 표방한 것처럼 심금을 울리는 슬픔을 건져올리는 데는 그다지 성공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에서 돋보이는 점은 이별이 닥치기 전, 사랑을 이야기하는 다양한 화법이다. 예컨대 놀이공원에서 백설공주 탈인형을 쓰고 일하는 수은(신민아)은 마음에 드는 미술학도 청년(이기우)에게 접근할 때도 말 대신 탈인형의 과장된 몸짓을 톡톡히 활용한다.

화상 자국이 있는 얼굴을 탈 속에 자꾸 감추려 하는 수은은 말을 못하는 청각장애인이기도 하다. 방송 뉴스의 수화 통역사로 일하는 언니 수정(임수정)과의 의사소통(사진)은 무리가 없지만, 수정의 남자친구이자 소방관인 진우(정우성)는 두 자매의 수화를 엉뚱하게 알아들어서 관객을 곧잘 웃긴다. 수화와 자막과 입으로 말하는 대사가 충돌하면서 아기자기한 웃음을 빚어내는 이런 장면들은 여느 영화에서 보기 힘든 시도다.

"제작진이 저희 학교에 와서 학생들 생활하는 모습을 보고 처음 시나리오보다 수화 분량이 크게 늘어났어요. 특히 임수정씨는 역할이 통역사라서 넉 달 동안 수화를 배우느라 고생을 많이 했죠."

이 영화에 수화를 지도한 허노중(서울농학교)교사는 "이제까지 한국 영화 중 가장 수화가 많이 등장할 것"이라고 말한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도 수화 장면을 도왔던 그는 영화.드라마가 흔히 저지르기 쉬운 잘못도 지적했다. "나란히 걸어가면서 말과 수화를 주고받는 장면은 말이 안 됩니다. 입 모양을 알아보려면 당연히 서로 정면에서 바라봐야죠. 또 언어장애와 달리 청각장애의 경우 입 모양만으로는 말을 정확히 알아듣기가 쉽지 않거든요."

영화에는 두 자매의 수화가 "웬 오버?"라는 자막으로 번역되는 대목이 있는데, 실제 수화에도 그런 식의 유행어나 줄임말이 곧잘 쓰인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임수정씨가 우리 학생들끼리 손으로 한창 얘기를 주고 받으면서 막 웃는 모습을 보고 그러더라고요. '소리없는 수다'라고요."

이 소리없는 수다가 여느 관객뿐 아니라 청각장애인 관객들도 웃길 수 있을까. 그는 "장애인 영화제에 학생들과 함께 보러 갈 예정"이라면서 "아마 우리 학생들도 재미있게 볼 것"이라고 내다봤다.

제6회 장애인 영화제(www.pdff.net)는 '새드무비'를 개막작으로 20~24일 서울 스카라 극장에서 열린다. 여기서 상영하는 한국영화 20여 편은 모두 청각장애인을 위한 한글 자막이 곁들여진다. 일부 영화는 난청인을 위해 FM주파수나 머리뼈를 통해 음향을 전달해 주는 기기나 시각장애인을 위해 성우가 화면을 해설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영화제 측은 "사전 인터넷 예약은 마감됐지만 좌석이 남아있는 영화는 비장애인도 현장 입장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장애인.비장애인이 함께 관람하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 역시 행사의 취지라는 설명이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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