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기관차 두리야, 내가 못 이룬 우승 이뤄주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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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운재(左), 차두리(右)

축구대표팀 수비수 차두리(35·서울)가 태극마크를 달고 뛸 기회는 이제 한 번밖에 남지 않았다. 31일 오후 6시(한국시간) 시드니의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리는 호주와의 아시안컵 결승전을 끝으로 차두리는 2001년 이후 14년 동안 달았던 태극마크를 반납한다.

 이운재(41) 23세 이하 대표팀 코치는 차두리의 은퇴를 남다른 감회로 지켜보고 있다. 이 코치와 차두리는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함께 뛰면서 한국의 4강 신화를 일궈냈다. 2004년 중국 아시안컵과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도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차두리와 이 코치의 인연은 또 있다. 차두리는 지난 10일 오만과 아시안컵 1차전에 만 34세178일의 나이로 출전해 이 코치가 갖고 있던 대회 한국 선수 최고령 출전 기록(만 34세102일)을 깼다. 다음달 1일 개막하는 킹스컵 출전을 위해 태국에 머물고 있는 이 코치가 차두리의 대표팀 은퇴를 앞두고 본지에 메시지를 보내왔다.

 얼마 전 네가 아시안컵 한국 선수 최고령 출전 기록을 깨면서 나보고 ‘미안하다’고 말했던 인터뷰를 봤다. 그런데 전혀 미안할 필요 없어. 다른 누구도 아닌 네가 그 기록을 깨서 흐뭇했다. 오히려 내가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구나.

 2001년 네가 대학생이었을 때가 기억난다. 대표팀 훈련 당시 너의 슈팅은 어떤 선수보다 강력했지. 한번은 슈팅이 너무 세서 “옷 찢어지겠다. 좀 살살 차라”고 했는데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더 강하게 슈팅을 하더라.

 네 경기 스타일을 뒤에서 지켜보면 폭주기관차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세련된 플레이는 아니었지만 몸으로 부딪히는 걸 좋아하고 빠른 스피드로 상대를 공략했지. 그런 모습이 10년이 지난 지금도 변치 않은 것 같아.

 그랬던 네가 어느덧 대표팀 은퇴라는 중요한 결정을 할 시기가 왔네. 14년 전만 해도 막내였던 네가 시간이 지나서 벌써 최고참이 됐구나. 오랫동안 한 팀을 위해 헌신적으로 뛰다가 노장 선수가 돼서 은퇴를 앞두고 있을 때의 마음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지. 나도 2010년에 대표팀에서 은퇴했을 때 그랬거든. 그만큼 두리 네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 그런 결정을 스스로 내릴 수 있는 두리야말로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대표팀 최고참이라는 자리가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어. 최고의 선수가 모인 대표팀에서 팀의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하고, 적지 않은 나이에도 최고의 몸상태를 유지해야 하잖아. 그래도 두리는 지금 그 역할을 아주 잘 소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두리를 중심으로 후배들도 정말 잘 해왔다. 아시안컵 결승전도 하던 대로 하면 충분히 우승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호주 선수들은 8만명이 넘는 관중 앞에서 꼭 우승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 게 당연하다. 호주 선수들의 이런 심리를 잘 파고들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두리 네 역할이 중요할 거라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아시안컵에 세차례 나가서 열심히 뛰었는데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해서 늘 아쉬움이 많았다. 네가 후배들과 함께 이번에 결승까지 올랐으니 멋지게 유종의 미를 거둘 일만 남았다. 어떤 대회든 결승전은 힘들다. 그래도 마지막이니까 네 스타일대로 마음껏 뛰어라.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또 한번 한국 축구의 희망을 보여주길 바란다.

정리=김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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