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법무 지휘권 발동 파문] 일본의 경우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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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도쿄지검 특수부는 여당 수뇌부가 조선업계로부터 국가보조금을 늘려주는 대가로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를 포착했다.

이른바 '조선 의혹 사건'이라 불리는 대형 비리 사건에 정치권 거물이 걸려든 것이었다. 검찰은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자유당 간사장과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 정조회장을 구속 수사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그러나 법무대신이 검사총장에게 지휘권을 발동했다. 불구속 수사하라는 것이었다. 자유당 소속의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총리가 이끄는 내각이 검찰 수사를 막은 것이었다.

당시 검사총장은 지휘를 받아들여 사토 간사장 등을 불구속 기소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일본 검사들은 지휘권이 발동된 날을 오랫동안 '검찰 치욕의 날'이라고 불렀다.

일본 검찰은 22년 뒤인 76년 '록히드 사건'에서 정치권에 예속됐다는 오명을 씻었다. 미국 록히드 항공기 회사가 일본 정.관계 인사들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를 도쿄 지검 특수부가 포착, 당시 집권 자민당 최대 파벌의 영수였던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를 전격 구속한 것이었다. 일본 검찰은 이 일을 정치권으로부터 독립성을 '쟁취'한 역사적 사건으로 꼽고 있다.

지휘권 발동 사태 때 도쿄지검 검사였던 이토 시게키(伊藤榮樹) 전 일본 검사총장은 80년대 중반 일본 아사히신문에 연재한 '추상열일(秋霜烈日)'이라는 회고록에서 "당시 검사총장이 법무대신의 지휘를 거부하고 자리에서 물러났어야 했다"는 글을 썼고, 일본 사회는 공무원의 상명하복 거부에 대한 정당성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을 벌였다.

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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