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방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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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당방위」라는 법률용어가 너도 나도의 입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애인과 캠핑중 느닷없이 습격해 온 폭력배들과 맞서다 칼로 상대편을 찔러 죽이고 애인의 정조와 자신의 생명을 지킨 청년에게 정당방위가 인정되어 검찰이 불구속조치를 하자 어느방송의 앵커맨은 『이런 남자라면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겠다』는 의미의 오프닝코멘트를 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형법상의 「정당방위」와 기사정신, 또는 결투정신과 혼동을 하는 것 같다.
서부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보안관과 악당의 1대1 대결이다. 약속한 장소·시간에서 일정거리를 두고 정면대결로 승부를 겨룬다. 등뒤에서 또는 숨어서 쏘는 것은 비겁자의 행위다.
대개는 보안관이 좀더 빨리 권총을 뽑아 악당을 쓰러뜨리고 관객은 박수를 친다. 이는 기사정신 또는 결투정신에 보내는 찬사지 정당방위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이 맞섰을 때 이미 하나는 죽는다는 것이 예견되어 있다. 그러나 형법상의 「정당방위」는 그 행위가 예기치 못했던 급박한 상황에서 일어나야 한다.
또 「공격」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반격」사이에 「공격」측이 받는 피해정도를 측정하는 법의 균형성이 있어야 한다. 이밖에도 정당방위의 성립에는 사회통념상 인정하는 법의상당성과 그 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는 법익보충성과 긴급피난성의 요건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법이 정당방위의 해석을 엄격히 하는것은 「공격」과 「반격」의 개념이 균형을 잃을 경우 법의 보호를 받기보다는 무턱대고 자기힘으로 대항하는 이른바 「투쟁력상승」이라는 부작용을 낳기 때문이다. 법실무상 정당방위인정이 드문것도 사실이다. 서울지검의 모부장검사는 학교에서 그토록 열심히 배웠던 정당방위론이 검사가 되어 지금껏 한번도 써먹을 기회가 없었다고 했다. 이번 사건을 놓고 정당방위인정을 자칫 사회적인 추세 또는 법의유행으로 보아서는 큰일이라는게 법조계의 의견이다.
범죄가 날로 집단화·흉포화됨에 따라 이번과 같은 사례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측면에서 자칫 투쟁력상승이라는 대항형식이 유행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당방위가 유행하는 사회보다 그 유행을 사전에 막는 정책이 아쉽다. <고정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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