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5. 불꽃을 따라서 <25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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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장수매는 바다 건너편에서 몰려온 수리 떼와 싸우면서 뭍으로 돌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는 우두머리 수리와 마지막 결판을 내기 위해서 마을 가까이로 날아오던 중이었다. 민담에서는 장수매가 장산곶 절벽에 둥지를 틀고 살다가 머나먼 시베리아로 날아가기 전에는 반드시 헌 둥지를 부수고 떠난다고 했다. 무수한 위험과 고난을 향해 가면서 둥지를 뒤에 남기고 가면 약해져서 돌아보겠기 때문이란다. 매와 수리의 결전을 바라보면서 마을 사람들은 북과 꽹과리와 징을 치면서 고함을 질러 힘을 북돋워 주었다.

허공에서 매와 수리의 깃털이 어지럽게 흩날렸다. 수리는 매의 거세어진 기세에 당하지 못하고 목을 움츠리더니, 상대를 버리고 바다 쪽으로 달아났다. 매가 사람들의 고함 소리에 힘을 얻어 수리 뒤를 바짝 쫓아갔다. 수리가 중심을 잃고 아래로 방향을 바꾸는데 매는 날개를 접고 위로부터 곤두박질치면서 수리의 머리를 쪼았다. 치명타를 받은 수리가 물에 처박혔고, 매는 다시 위로 드높게 날아올랐다. 마을 사람들의 환성이 크게 일어났고, 매는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자랑스럽게 맴돌더니 지친 듯이 마을 어귀의 당솔나무 가지 위에 내려앉았다.

마을 사람들은 먹이를 준비하고 풍악을 잡히면서, 매가 그들의 어깨 위에 다정하게 내려앉기를 재촉하였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매는 다른 때처럼 사람들의 팔뚝에도 내려와 앉지 않고 나뭇가지 위에서 날개만 몇 번 퍼덕여 보일 뿐이었다.

주위가 완전히 캄캄해질 때까지 마을 사람들은 횃불을 밝혀 들고 매가 내려오기만을 기다렸다. 횃불 빛에 드러난 해송의 깊숙한 구멍 속에서 이번에는 구렁이가 기어나왔다. 구렁이는 비늘을 번쩍이며 사리를 풀고는 나무를 타고 꿈틀꿈틀 기어올라갔다.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더니 이윽고 폭우가 줄기차게 쏟아져 내려왔다. 천둥이 울고 번개가 번쩍였다. 빗소리와 우렛소리 속에서 밤새껏 퍼덕이는 날갯소리가 들려왔다.

동녘이 부옇게 밝을 즈음에, 지쳐서 나무 둥치 아래 둘러앉은 사람들 앞에 토막난 구렁이의 사체가 떨어져 내려왔다. 나뭇가지에 걸친 채로 날개와 부리를 땅으로 축 늘어뜨린 매의 형상이 보였다. 마을 사람들은 어째서 매가 나무에서 끝내 내려오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날렵한 아이를 시켜 나무 위에 오르도록 하였다. 올라간 아이가 죽은 매에 손을 대려다가 분한 듯이 외쳤다.

실 매듭이 나뭇가지에 걸렸어요.

남에게 빼앗길까 하여 매가 마을의 소유임을 표하느라고 매어놓은 오른쪽 발목의 붉은 실 매듭이 매를 죽게 했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매와 맺은 인연을 그저는 믿지 못하여 매듭으로 확인해 놓아야만 했던 것이다. 그 인연 때문에 매는 밤새 싸웠고 기진하여 죽게 되었으니.

어찌 백성의 가엾은 뜻을 위해 죽은 자가 그뿐이었겠는가. 흐르는 물과 같이 연면(連綿)한 산맥 같이 앞뒤로 끊임이 없건마는, 여럿과 맺은 관계가 마치 저 장산곶 매의 발목에 묶인 매듭과도 같았고, 그 장한 뜻의 꺾임은 뒤댈 바탕이 부족하매 분한 노릇이었다. 폭풍이 몰아치는 날 서낭나무는 둥치를 떨고, 내부에서는 구렁이가 꿈틀거리는데 가지에 걸린 매가 날지 못하여 깃을 퍼덕이는 안타까운 여러 밤이 끝도 없이 계속되었다.

그림=민정기
글씨=여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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