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아들의 백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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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첫 아들의 백일이었다. 그러나 벌써 1년 넘게 직장이 없이 놀고 있는 남편의 처지에 백일이란 그야말로 분수를 모르는 것이었다. 시부모님 등에 얹혀 사는 형편에 백일잔치를 바란다는 것은 더구나 못할 짓이었다.
백일은 그냥 넘기고 돌때나 잘 해주지 하는 체념과는 달리 날자가 가까와 오면 올수록 나의 마음은 편하지 못했다. 그런 엄마의 마음을 모르는 아이는 그저 옹알이를 하며 손을 쪽쪽 빨고 깔깔 웃기도 하며 눈동자를 굴리는 모습을 보여 자꾸만 콧등이 시큰거려왔다.
우울한 마음으로 드디어 아기 백일을 맞았다. 미역국을 끓이고 밥을 한그릇 뜨신 시어머님께서는 『어디, 삼신할미한테 빌어보자』하시며 아이를 당신들의 방으로 안고 가셨다. 나는 가볼 기분이 아니었다.
잠시후 아기를 내 품에 안겨주시고 삼신할미께 빌었다는 국과 밥을 가지고 오셨다. 그 밥을 아기 엄마가 먹어야 한다며 상을 보아주시는 시어머님의 다정한 마음 쓰심. 수북이 담은 밥과 국그릇을 내려다보며 눈물이 또르르 굴러 국그릇으로 떨어질 것만 같아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저녁때 시누이들이 분유 두통과 삑삑 소리가 나는 장난감 강아지를 아기 머리맡에 갖다 놓는다.
그이도 영 우울한 표정이 어디 가서 술이라도 잔뜩 퍼 마시고 싶은 그런 모습이었다.
아기의 머리맡에 앉아 한숨을 길게 쉬더니 머리를 쓰다듬고 볼을 만지작거리며 독백처럼 『은아, 미안하다. 다 아빠를 잘못 만난 탓이다. 하지만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야지』한다.
나는 못 들은체, 못 본체 아랫 입술을 꼭 깨물곤 기저귀를 접으며 앉아 있었다. 그이가 조용히 하모니카를 불기 시작했다.
하모니카 소리에 마음이 한없이 풀리기 시작했다. 2월에 있었던 공무원시험에는 실패했으나 8월에는 틀림없이 그이가 합격하리라. 아기의 백일과 더불어, 하모니카소리와 더불어 가난한 우리에게도 금방 여유가 찾아올 것만 같다.
이선미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 262의1 평화연립3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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