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87)제79화 육사졸업생들(140)-6관구 사령부의 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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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30사단의 기밀누설로 출동 예정부대가 좌초위기에 놓인데다 6관구사령부와 33사단마저 혼미에 빠져들어 간다는 김재춘 6관구참모장(5기)의 다급한 보고를 받은 박정희소장은 예정보다 30분 늦은 밤11시30분 신당동사택에서 6관구 사령부로 떠났다.
한편 급보에 접한 장도영총장도 밤10시40분쯤 조선호텔 맞은 편에 위치한 서울지구 방첩대로 나와 혁명 저지를 위한 엄명·특명을 내리기 시작했다.
장총장은 6관구사령관 서종철소장(59·경남양산·육사1기·전국방장관)에게 6관구사령부의 상황을 파악토록 하는 한편 이광선 헌병차감에게는 6관구에 집결중인 2O여명의 혁명 핵심멤버를 즉각 체포토록 지시했다.
또 주력부대로 알려진 김포주둔 공수단 박치옥대령(5기)에게 일체의 훈련을 중지할 것과 다음날 아침까지 부대를 장악토록 엄명을 내리고 감시를 위해 육본 특전감 장호진준장을 공수단에 급파했다.
이무렵 이병엽대령과 오학진작전참모(8기)에 의해 동원키로 되었던 서울근교 33사단은 「육본비상훈련」이란 명목으로 이미 출동준비에 착수하고 있었다.
장총장은 33사단강 안동부준장에게 『내 육성 외에는 어떤 지시 명령에도
응하지 말라』고 지시하고 집결중인 부대의 해산을 명했다.
자정을 기해 혁명 핵심멤버가 집결키로 되어있던 혁명군 지휘본부인 6관구사령부는 혁명군과 혁명저지군이 한꺼번에 밀어닥쳐 유혈충돌의 일촉즉발 위기에 놓였다
서 6관구사령관은 11시쯤 부대비상을 걸었고 영외로 나갔던 장교들은 황급히 귀대했다.
부대주변은 무장한 경비병에 의해 삼엄한 경비망이 펼쳐졌다.
이때 출동 마지막 점검을 하기 위해 부대에 남아 있던 작전참모 박원빈중령등 혁명군측도 본부사령과 제10경비부관에게 2개소대를 완전 무장케해 사령부의 3개 출입구에 각각 20명씩 배치시켰다.
여기에다 헌병 11중대 전원이 사령부 외곽을 포위하는 바람에 혁명군과 반혁명군은 2중·3중의 무장경비망을 펴는 대혼란이 야기됐다.
사령부안에서도 군일부에서 쿠데타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진압파 장교들과 참여파 장교들이 서로 적과 동지를 구별하느라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6관구 혁명군의 중심세력인 참모장 김재춘대령이 기밀누설을 알게된 것은 저녁때 출동준비를 끝내고 H아워를 기다리기가 답답해 몇몇친지를 만나보기 위해 시내를 배회하던 밤10시30분쯤.
시내에 있던 김대령이 부대에 남은 박원빈중령에게 전화를 했더니 『30사단의 배반으로 정보가 누설돼 30사단 이백일중령에겐 체포령이 내렸다. 이중령은 피신해 있으면서 9시30분쯤 이 사실을 알려왔다』며 다급해하더라는 것이다.
이때 김대령은 신당동 박소장 사택에 즉각 연락했고 박소장은 『제2안대로 결행한다. 내가 갈 때까지 사령부를 장악하라』며 전화를 끊었다.
이 제2안이라는 것은 사전에 기밀이 누설되는 경우 『병력동윈에 대항하는 방해분자를 제거하고서라도 거사를 강행한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밤11시가 넘어 김대령이 부대에 들어서자 서종철소장은 참모장인 김대령에게 부대를 장악하고 관련 장교전원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김대령의 혁명참여를 몰랐던 서소장으로서는 참모장에게 모든 책임을 일임하는 것이 당연한 조치였다.
김대령은 혁명동지들을 참모장실로 집합시키는 한편 혁명저지를 위해 출동한 장군·수사관·장교들은 사령관실로 안내해 마찰과 혼란을 피하게 했다.
이즈음 부대안에 있던 혁명군 장교들은 박소장의 도착이 늦어지고 사태가 점점 암담하게 진전되는 것 같아 초조와 불안이 극에 달했다.
더구나 자정께 부대안에 있던 윤태일준장(작고·감북회령·7특·중장예편)송?호준장(당시 고사포여단장·최고위원전주브라질대사) 이원엽대령(당시육군항공학교장·감사원장·전국회의원) 최재명대령(초대감찰위원장·전국제관광공사총무이사)등은 이날 하오6시쯤 박소장 사택에서 장총장을 설득하기 위해 써두었던 박소장의 친서를 휴대하고 사령부를 떠났다. 그러니 남아있는 혁명군 장교들은 고작 중령급들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장총장으로부터 육본에서 나온 장교들은 꼼짝 못하도록 감금하라는 지시가 있자 헌병차감 이광선대령이 조서용지를 든 70명의 수사대원을 인솔해 6관구사령부에 도착, 혁명군 장교들을 문초하려는 즈음이었다.
혁명군 장교들은 이미 모든 것을 각오하고 권총과 카빈을 휴대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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