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장-2인칭 문화시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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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2인칭 적문화」가「편지의 문화」이며「연금술적문화」라는 것은 이미 말한 그대로입니다. 그것이 추상적인 것으로 들린다면 인간과 인간의 거리로서 직접 측정할 수가 있을것입니다. 요즈음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문화인류학자「에드워드·홀」은 대인간거리를 네가지 의미의 영역으로 분류한 적이 있읍니다.
그 거리가 제일 가까운 것이 피부로 직접 느낄 수 있는「밀접거리」(0∼18인치)입니다. 이거리에서 인간들은 애무를 하거나 또는 씨름과 같은 격투를 하기도합니다. 여기에서 좀더 떨어져 상대방의 체취를 맡을 수 있을만 한거리를 유지하는 것이「개체거리」입니다(1·5∼4피트). 그러나 4피트이상 떨어진 인간의거리, 이를테면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상대방몸에 닿을수 없는 거리가 되면 그것은 사회적거리입니다. 사무적인 인간관계는 모두가 4피트에서 12피트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이상 떨어지게 되면 사람들의 표정도, 말소리도 잘 들리지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공중거리」입니다. 공적으로 중요한 인물의 주위에는 자동적으로 공중거리인 30피트의 거리를 두게된다는 것입니다.
이 공중거리에서는 보통 목소리로 말해서는 의미의 섬세한 뉘앙스나 얼굴의 세세한 표정이나 움직임을 느낄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언어학자의 관찰에 의하면 이러한 거리에서는 언어를 사용하는 태도도 달라져서「공식적문제」,「속결의 문제」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마틴·조즈」의 말대로 동결의문제는「끝까지 친구사이가 될 수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문제」이지요.
공문서에서 쓰이고 있는 말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홀」은 이렇게 대인거리를 넷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지만, 그것을 만약 인칭으로 생각해 본다면 세영역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거리와 공중거리는 3인칭적인 거리이고 개체거리는 2인칭적, 그리고 일정거리는 1인칭적인 거리라고 할수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물리적공간 용언어의 공간으로 옮겨보면「밀집거리」는 속삭이는 말로서 독백의 언어가 될것입니다.
포옹의 자세와도 같은 밀접거리에서는 상대편의 얼굴을 볼수없듯이 대화도 이루어질수 없습니다.
너무 가깝기 때문에 말은 바로 입김으로 변해 버릴것입니다.
그와는 정반대로 사회거리 특히 30피트가 넘는 공중거리에서는 대화가 불가능 해집니다.
아무리 정감있게 말하려고 해도 연설조가 되어 버립니다.
3인칭문화의 말은 형식적으로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거리에서도 상대편의 얼굴은 잘보이지가 않습니다.
1인칭문화도 삼인칭문화도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거기에는 「얼굴과대화」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하나는 너무 가깝기 때문에, 또하나는 너무 멀기 때문입니다.
2인칭의 거리에서만 이 인간의 말은「대화」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같은 언어의 공간을 눈물의 공간으로 옮겨오면 어떻게 될까요. 눈물은 이 세상에서 아름다운 액체입니다. 비가와야 무지개가 생겨나 듯이 눈물을 흘러야 그 영혼에도 아름다운 무지개가 돋는다는 말도 있읍니다.
그러나 눈물이라고 해서 모두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때로는 가장 추악한 썩은물 일수도 있는 것입니다.
1인칭의 눈물은 자기자신을 위해 흘리는 눈물로서, 그것은 엉겅퀴잎에서 구르는 이슬만도 못한 것입니다.
자기의 한 때문에 흘리는 눈물-자기의고통, 자기의운명, 자기의상처 때문에 흘리는 눈물은 무지개가 될 수 없습니다. 설득력도 감동도 주지 않습니다.
3인칭적인 눈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속에 있지도 않는 타자를 위해 흘리는 그 공중의 눈물(정치가가 곧잘 이런 눈물을 많이 흘립니다)은「악어의 눈물」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위선적인 그 눈물에는 열기라는 이 없습니다. 가장 차가운 눈물이지요.
눈물은 임을 위해서 흘릴 때가 가장 아름다운 것입니다.
한용운의 시에 나타난 것처럼 단순한 임만이 아니라 우리가 마음속으로 섬기고 있는 임, 사랑하고 동경하고 그리워하는 영원한 2인칭적인 존재를 위해서 흘리는 그 눈물은 시가 되고 음악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2인칭과 3인칭의 차이는 거리의 차이일 뿐 그 대상은 다른 것은 아닙니다. 똑같은 존재라할지라도 거리에 따라서, 그것의 인칭은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세계의 공간을 2인칭적으로 인식할 「얼굴없는 사회」,「동결한 문체」로부터 벗어날수가 있습니다. 그래서「당신의 얼굴」「당신의 말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될것입니다. 2인칭적 세계에서는 신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의 옆방에 있는 것이고, 모든 사람은 지구의 저변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베개 옆에 있는 것입니다. 작은 소리로 기침을 해 도 알아들을 수 있는「개체거리」로 인간은 사물을 그리고 저 멀리있는 별까지도 끌어들입니다. 그러한 2인칭문화의 시대를 위해 나는 언젠가 또 당신에게 긴 편지를 쓸것입니다.

<이어령 연재편지>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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