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 세상을 말하다] 狗猛酒酸<구맹주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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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8호 27면

개가 사나우면 왜 술이 시어지는 걸까.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이야기를 음미해보자. 옛날 중국 송(宋)나라에 술을 파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술을 팔 때마다 술의 양을 적지도 않고 많지도 않게 아주 양심적으로 공평하게 나눠 팔았다. 또 손님을 대할 때는 그 태도가 매우 은근하면서도 공손해 사람들의 마음을 샀다. 술을 만드는 재주 또한 뛰어나 알맞게 담가진 술의 향기는 대단히 감미로웠다. 술집 바깥에는 술을 판다는 깃발을 높이 달아 바람에 힘차게 펄럭였다. 사실 술을 잘 팔 수 있는 각종 조건을 다 갖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데 도대체 사람들이 술을 사러 오지 않았다. 한동안 시간이 지나자 술은 그만 시어지고 말았다. 술 파는 이는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답답한 마음을 가눌 길 없어 같은 골목에 살고 있던 연장자인 양천(楊倩)에게 가르침을 구했다. 이에 양천이 물었다. “당신이 기르는 개가 매우 사납지 않은가?” 술 파는 이가 답했다. “개가 사나운 게 술이 팔리지 않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요?” 그러자 양천이 말하기를 “사람들은 개를 무서워한다네. 대개 어른들이 아이들을 시켜 호리병 술을 사오게 하곤 하는데 당신의 개가 아이들을 무니 이게 바로 술이 시어지고 팔리지 않는 이유일세”라고 했다. 여기서 개가 사나우면 술이 시어진다는 구맹주산(狗猛酒酸)이란 말이 나왔다.

한비자는 이 이야기를 하면서 덧붙이기를 나라에도 사나운 개가 있다고 했다. 어진 이가 군주를 도와 현명한 정책을 내놓으려 해도 마치 사나운 개와도 같은 간신배들이 군주를 가리고 현자(賢者)를 물어뜯으니 정사(政事)가 제대로 펼쳐질 리 없다는 뜻이다. 현명한 신하가 등용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옳은 정책을 군주에게 아뢰려 해도 조정 안에 간신배가 들끓으면 성사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최근 우리나라 정국을 빗대어 매스컴에 풍자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말이 바로 이 구맹주산이라는 성어다. 그러나 어디 나라에만 사나운 개가 있을까. 기업이나 단체 등 어느 조직에도 물기 좋아하는 사나운 개는 다 있게 마련이다. 문제는 주인일 것이다. 사나운 개가 손님을 물고 안 물고는 주인이 그 개를 어떻게 길들이느냐에 따라 확연히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scyo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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