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모두들 더 사랑하게 해주세요 '떼쟁이' 김수환, 16년 전 고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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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거룩한 경청
김수환 지음, 우광호·이승환 엮음, 여백미디어
232쪽, 1만3800원

시중에 나가면 김수환 추기경(1922~2009)과 관련된 책들이 많이 나와 있다. 그렇다면 김 추기경의 강연집으로 이번에 출간된 『거룩한 경청』의 차별성 있는 셀링포인트(selling point)는 뭘까.

 굳이 비교한다면 이 책은 최고의 불교 입문서 중 한 권인 『선심초심(禪心初心·Zen Mind, Beginner’s Mind)』(1970)의 그리스도교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이다.

 스즈키 슌류(鈴木俊降·1904~1971) 선사의 『선심초심』과 마찬가지로 이 책의 출발점은 강연록이다. 사제들을 대상으로 한 1999년 강연을 월간잡지 ‘가톨릭 비타꼰’의 우광호 편집장과 이승환 편집기자가 읽기 쉽고 정감 있는 우리말로 정리했다.

 이 책의 타깃 독자는 누구일까.

 첫째는 가톨릭에 관심 있는 일반 비신자 독자들이다. 『거룩한 경청』은 그리스도교의 ‘맏이 교회’라고 할 수 있는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의 핵심을 담았다.

 둘째는 개신교 신자들이다. 특히 아직도 가톨릭이 ‘마리아교’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이 책을 통해 가톨릭에 대한 여러 오해를 풀 수 있다. 또 가톨릭에 호의적인 ‘열린’ 개신교 신앙인은, 개신교하고는 미묘하게 다른 가톨릭 신앙에 대해 좀 더 잘 알게 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셋째, 마음과 영혼의 ‘목욕’이 필요한 모든 분들도 『거룩한 경청』을 통해 때가 깨끗이 씻기는 체험을 할 수 있으리라.

 넷째, 이 책은 일종의 ‘영성(靈性) 여행기’다. 종북이건, 친박이건, 남북 통일이건, 세계 평화건 수많은 속세 용어를 떠날 필요가 있다. 『거룩한 경청』은 김수환 추기경과 1주일 간 미리 떠나보는 ‘하느님 나라’ 여행이다.

 다섯째, 이 책은 보다 품위 있고 따뜻한 강연을 하고픈 베테랑 강연자들에게 안성맞춤인 고급 강연 이론서다. 아마도 김수환 추기경은 미사 강론을 포함해 강연을 수천 번, 수만 번을 했으리라. 이 책에는 ‘강연자 김수환’의 노하우가 녹아 있다. 청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법, 청중에게 적절하게 묻고 답하는 비법이 담겼다.

 여섯째, 삶의 여백이 필요한 모든 분들을 위한 책이다.(마침 출판사 이름이 ‘여백’이다.)

 일곱째, 일반 자기계발서로도 읽힐 수 있는 책이다. 인생에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찾게 해주기 때문이다. 소화 데레사 성녀의 경우에는, 제일 자신 있는 게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교회 안에서 사랑이 되겠다”고 다짐했다는 내용이 이 책에 나온다.

 여덟째, 연말연시에 선물을 해야 하는 데 딱히 떠오르는 게 없는 분들에게도 이 책은 선물용으로 ‘강추’할만하다.

 아홉째, 김수환 추기경에 대해 막연한 호감은 갖고 있었으나 그분의 인생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분들도 예비 독자다. 책 말미에 김 추기경의 생애에 대해 압축적으로 정리돼 있다.

 한마디로 이야기 한다면 이 책은 ‘하느님을 향한 더 큰 믿음을 주세요’ ‘사람과 하느님을 더더욱 사랑하게 해주세요’라며 떼쟁이 아이처럼 하느님께 간청하던 바보 김수환의 전기다. 또, 이런 저런 아픔을 신앙으로 이겨내며, 하늘나라와 세상 나라의 간격을 좁히려고 애쓴 김수환 추기경의 신앙 고백록이다.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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