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서 누르는 아버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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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그러고 보니 세상엔 애 아버지 말고도 「아버지」라고 불리는게 많다. 하나님 아버지, 마피아의 대부. 아무것도 덤으로 안붙는 그냥「파더」지만 요새 영국에서 이름떨치는 「아버지」들도 생부와는 다른 아버지다.
노동조합의 신문사별 분회의 위원장을 영국에선 공칭 파더, 「아버지」라 부른다. 유럽에서의 인쇄술이라는게 주로 교회를 중심해 발달해온데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들었다. 노조분회도 신문사에 있는 것은 모두 채플, 예배당이라 불린다. 「날고 타임즈예배당·젱킨즈아버지」면 전국인쇄종판노조 타임즈분회위원장을 가리킨다.
중세때의 신부들이란 이세상, 저세상 양쪽을 다 관장했던 터라 그들의 힘은 이름 그대로 막강했었다. 요즘의 영국 아버지들은 어떤가?
얼마전 유행했던 말을 빌자면 중세 아버지쯤은 「저리가시라」다가 아닌지 모르겠다. 분서갱유의 진시황보다도 어떤 점에선 실력이 더 놀랍다. 한예가 이들이 지금 살아나와 보자하니 런던의 더타임즈지가 비위에 맞지 않는다고 계엄령을 펴서 신문을 빈칸으로 곰보를 만든다거나 아예 발을 묶어버리기란 어렵잖지않나 여겨진다.
반쯤은 농일테지만 영국에서 쿠데타가 나기 어려운 것은 음모가 더타임즈를 어떻게 할거냐에 이르면 모두들 무릎이 두부가 되기때문이래서랬다.
그러나 요새 「아버지」들에겐 더타임즈 하나 곰보로 하는것쯤은 약과다. 지난 세모엔 전기노조아버지가「아들」들을 데리고 나가 보름동안이나 신문이 나오지 못했다. 관련 노조원들은 회원수의 20분의1도 안됐었고 명분도 기술혁신같은것 왜하느냐, 였었지만 신문이 꼼짝없이 못나오게 되는대야 정말 어쩔것이냐. 게다가 신문마다 제작·판매과정에 관련되는 아버지수는 스무나뭇을 헤아리는게 보통이다. 그리고 아버지끼린 서로 눈을 감는다.
어깨넘어로 들은 얘기지만 한문의 민자가 생겨나긴 바늘로 백성들의 눈을 질러 장님을 만든다는데서 나왔단다.
아닌게 아니라 요새 민자에서도 눈알을 빼내면 민자가 된다. 아니래도 좋다.
백성의 눈이건 언론이건 그걸 거추장스럽게 여겨온게 동서고금, 위에 있는 정치권력이었었던건 틀림없다.
그런데 요새 영국에선 누른다하면 위에서 밑으로만 누르는게 아니라, 아버지들이 밀에서 위로도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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