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독의 미사일 총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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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6일로 다가선 서독 총선을 보고 있노라면 서독선거가 아니라 어떤 때는 마치 동서대결을 판가름하는 선거 같은 인상을 받을 때가 있다.
오래 계속된 경제불황의 여파로 13년 집권 사민당 (SPD)이 도중하차하고 치르게된 선거인 데도 정당간의 쟁점이 경제정책 문제보다는 미국의 중거리 핵무기 배치문제 논쟁으로 시종하고, 또 미소가 이 논쟁의 방향에 영향력을 주기 위한 갖가지 공작을 하고있기 때문이다.
미소가 이번 선거를 「미사일선거」 또는 「미소에 대한 유럽의 국민투표」라고 빈정대는 표현까지 등장하고 있다. 미소가 이번 선거를 앞두고 요인들의 방문외교나 정치지도자들간의 편지 교환, 성명발표 등을 통해 다루어 중거리핵무기 문제를 거론하고 있는 것은 어느 정당이 집권하느냐에 따라 제네바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거리핵무기(INF)협상의 장래가 크게 영향받게되는 탓이다.
앞으로 들어설 서독정부의 성격에 따라 다른 유럽국가들의 이 문제에 대한 태도가 좌우될 것이라는 데서 미소뿐 아니라 다른 서구국가들도 큰 관심을 갖고있다.
이 때문에 「레이건」 미국대통령은 『만약 미국의 중거리미사일 배치에 반대하는 정권이 들어서면 유럽평화를 위해 슬픈 일』 이라는 실언까지 해가며 친미성향이 짙은 「헬무트·콜」 현 수상의 기민· 기사동맹 (CDU· CSU)의 집권희망을 노골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이에 반해 소련은 핵문제에 관한 한 미국에 유보적 태도를 보이는 SPD의 정권탈환을 바란다. SPD의 수상후보인 「한스·요헨·포겔」이 얼마전 모스크바를 방문 했을때「안드로프프」가 파격적인 환대를 베푼 것을 비롯, 기회 있을 때마다 SPD를 지원하는 제안을 내놓고 있다.
서독선거에 영향을 주기 위해 소련이 보인 태도 중 절정을 이룬 것이 지난달 24일 있었던 「그로미코」소련외상의 프라우다 회견이다. 서독 선거에 대한 노골적인 「간섭」이란 여야의 반발을 받은 그의 발언은 서구국가들에 대해 INF협상에서 『미국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소련제안을 지지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만약 그렇지 않고 미국의 퍼싱 미사일이 유럽에 배치되고 난 뒤엔 소련은 더 이상 핵 철수협상을 벌이지 앉겠다는 최후통첩 같은 위협이다.
중거리핵무기 문제 때문에 외국에서는 서독의 선거가 이 논쟁의 결과에 따라 좌우될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 현상일 뿐 국민들의 실질적 관심은 역시 일자리와 호주머니 사정에 집중돼 있는 것으로 여론조사들은 전한다. 표면에 드러난 쟁점이야 어떻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동서고금의 진리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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