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명의 숨은 강자 안조영7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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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제37기 왕위전 본선리그 제8국
[제1보 (1~18)]
白·安祚永 7단| 黑·趙漢乘 6단

이창호9단의 그늘은 깊고도 넓다. 그 그늘에 가려 많은 준재들이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는데 그중 대표적인 한 사람이 바로 안조영7단이다.

이창호9단은 이미 14살 때 국내대회 우승을 시작했고 17살에 세계대회 우승컵을 따냈다.

그가 너무 일찍 정상에 올랐기에 동년배는 물론이고 근 5년 이내의 후배들마저 모조리 구석으로 몰렸다. 거의 초토화됐다.

이 같은 폭풍 속에서도 힘들게 우승을 일궈낸 기사가 최명훈8단과 목진석6단이다. 그리고 비록 성공은 못했으나 "내가 있다"고 외치며 몇번인가 도전장을 던졌던 기사들이 바로 윤성현8단, 김승준7단, 안조영7단, 이성재7단 등이다.

安7단은 올해 23살이니까 이창호9단보다 네살 아래다.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安7단은 14살 때 프로가 됐고 18살 때는 신예기전에서 우승해 출중한 기재(棋才)를 뽐냈다. 19살 때는 드디어 최고위전 결승에 올라 이창호9단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 벽은 너무도 강하고 높았다. 安7단의 기세도 드높았으나 근접 승부 끝에 반집 차로 역전당하는 등 실오라기 하나 차이로 미끄러지고 말았다.

당시의 이창호는 '번기(番棋)'에서는 무패를 자랑하던 시절이었으니 安7단으로서는 시대를 잘못 타고난 것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李9단에게 한번 더 도전했으나 역시 패배. 만약 이창호가 아니고 다른 기사와 결승전을 치렀다면 충분히 우승할 만한 실력이었지만 운도 따라주지 않았다.

이렇게 세월을 보내는 동안 安7단은 슬슬 신예군에게 쫓기게 되었으니 그 강력한 신예군 중 한 사람이 바로 이 판의 조한승6단이다.

이 판은 본선8국. 安7단은 서봉수9단을 꺾어 1승을 올린 다음 역시 1승을 거둔 趙6단과 맞닥뜨린 것이다. 4월 17일 한국기원.

趙6단의 흑7이 독특한 취향이다. 12는 安7단의 기풍을 드러내는 느릿하고 두터운 수. 13까지 흑은 빠르게 실리를 차지했다.

14도 참으로 안조영다운 무념무상의 한 수다. 실리를 내주고 벽을 쌓았으니까 흑7 한 점을 크게 잡아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고도 남을 텐데 安7단은 그쪽엔 무심하다.

'참고도' 백1로 가르면 흑은 2로 굳힐 것이다. 3으로 잡으면 A의 젖힘을 당한다. 잡으러 덤비는 건 이래저래 골치만 아플 뿐 영양가가 없다고 본 것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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