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한비야의 길!

나만의 특별한 송년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한비야
구호활동가·이화여대 초빙교수

올해도 나는 특별한 송년회를 준비하고 있다. 나와 단둘이 하는 송년회! 일 년 내내 사람들과 뒤섞여 숨 가쁘게 살아왔으니 마무리만큼은 혼자 차분하게 하고 싶다. 그래서 12월 마지막 주에는 아무 약속도 안 잡고 마지막 2~3일은 아예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않으면서 본격적인 나만의 송년회를 시작한다.

 첫 번째 순서는 집안 정리다. 준비물은 커다란 박스, 행동지침은 미련 없이 신나게 버릴 것! 이 방 저 방 다니면서 책이며 옷이며 각종 기념품이며 서류들을 한 아름씩 가지고 나와 박스에 확 쏟아 넣으면 그렇게 속이 시원하고 개운할 수가 없다.

 다음 순서는 컴퓨터 정리. 내 컴퓨터 바탕화면에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문서가 많이 깔려 있는 걸 보고 사람들은 놀라곤 한다. 그때마다 “하루 날 잡아서 싹 정리할 거예요”라고 하는데 그날이 바로 연말이다. 지금 바탕화면에 있는 새로 쓰는 책 원고, 필리핀 재난복구 관련 문건, 유엔 회의자료, 개인 사진 등도 며칠 내로 여러 개의 폴더 안에 말끔히 정리해 내 문서와 외장하드에 저장해 놓을 예정이다. 아, 생각만 해도 속이 후련하다.

 그 다음은 그해 일기를 모두 읽기다. 2~3권쯤 되는 일기장을 읽고 있으면 그해의 크고 작은 일은 물론 기쁨과 즐거움, 괴로움과 억울함, 뿌듯함과 아쉬움이 마치 어제 일인 양 생생하다. 그리고 늘 가슴이 뭉클해진다. 올 한 해도 수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고마운 마음 때문이다. 동시에 내가 마음 상하게 하고 가슴 아프게 한 사람들도 꼭 한두 명씩 떠오른다.

 마지막 순서는 이들에게 감사하기와 용서 구하기다. 고마운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기, 미안한 사람들에게 용서 구하기, 그리고 내가 용서할 사람들은 통 크게 용서하고 털고 가기. 사실 이게 내 송년회의 핵심이자 하이라이트인데, 깔끔하게 한 해를 마무리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할 수 있는 비법이기도 하다.

 솔직히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고맙다는 얘기는 얼마든지 하겠는데 미안하다는 말은 쑥스러워 메일이나 문자로 할 때도 많다. 그러나 두 눈을 질끈 감고 용기를 내어 직접 말하는 게 제일이다. 전화해서 “미안했어요” 하면 보통은 “뭐가요?” 혹은 “별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말아요” 한다. 그러나 잠시 침묵이 흐를 때도 있다. 마음이 많이 상했던 거다. 그럴 때는 정말 미안하다. 이런 사람도 통화가 끝날 쯤에는 “전화해 줘서 고마워요. 마음이 가벼워졌어요”라고 한다. 그러면 내 마음도 가벼워진다. 내가 잘못한 것 같진 않지만 뭔가 서먹해진 사람에게도 전화 걸어 “그때 그일 미안했어요” 하면 십중팔구 “나도 미안했어요”라는 말이 돌아온다. 이럴 때마다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한 것처럼 무진장 뿌듯하고 기분 좋다.

 물론 전화로 모든 일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 이런 경우처럼 말이다. 며칠 전 지방에 갔다가 열 살 남짓 된 꼽추 아이를 보았다. 자꾸 쳐다보니 자기를 구경하는 줄 알았는지 뚱한 얼굴이 되어 잰걸음으로 달아난다. 그럴 뜻은 아니었는데…. 난 곱사등이를 보면 가슴이 뜨끔하고 죄지은 기분이 된다.

 초등학교 때의 일이다. 우리 집 앞에는 우물이 있었는데, 어느 날 그곳에서 돌쟁이 친구 동생을 데리고 놀다 그만 시멘트 바닥에 놓치고 말았다. 꽝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떨어졌다. 꼬집어도 웃기만 하는 아기인데. 얼마나 아프고 놀랐는지 숨 넘어갈 듯 자지러지게 울었다. 무서워서 얼른 아이 엄마한테 데려다 주며 “아줌마, 내가 애기를 떨어뜨…”라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 엄마는 “응. 우리 아가, 배가 고파?” 하고 어르며 젖을 물렸다. 나는 떨어뜨려서 아기가 운다는 말을 차마 다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 너무 걱정이 되어 밥도 못 먹고 안절부절못하다가 엄마에게 슬쩍 물었다.

 “엄마, 애기를 시멘트 바닥에 떨어뜨리면 큰일나?”

 “그럼, 척추를 다치면 곱사등이가 되고, 머리를 다치면 바보가 돼. 그러니까 정미 동생 데리고 놀 때 조심해야 해, 알았지?”

 엄마의 그 말에 어찌나 무섭고 떨리든지. 그때부터 정미 동생만 보면 등을 만져보았다. 혹시 곱사등이가 되는 건 아닌지 해서. 눈도 들여다보았다. 혹시 바보가 되는 건 아닌지 해서. 얼마 후 정미네는 이사를 가고 영영 소식이 끊겼다. 그러나 지금도 척추장애아를 보면 내가 떨어뜨린 정미 남동생이 저렇게 된 건 아닐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혹시의 혹시라도 그렇게 되었다면… 사죄할 길은 없지만 미안하다. 아니, 사죄할 길 없어 더 미안하다.

 돌아보면 미안한 사람이 어디 정미 동생뿐이랴. 알면서도 가슴 아프게 또는 섭섭하게 한 사람들은 물론 나는 선의를 가지고 한 언행이지만 그것 때문에 상처받았을 많은 사람에게 정말 그럴 뜻은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다.

 여러분의 ‘송년 특집’으로 부디 저를 용서해 주시길.

한비야 구호활동가·이화여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