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비즈] 연탄불처럼 피운 우정경영 5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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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세상을 먼저 뜨면 남은 사람이 유가족을 돌본다. ②둘 중 한 명이 반대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삼천리와 ㈜삼탄의 회장실 금고 깊은 곳에 각각 한 장씩 보관된 '동업 각서'에 적힌 내용이다. 에너지 전문그룹 삼천리의 이만득(49.사진) 회장이 창립 50주년을 앞둔 지난 9일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선대 경영진의 동업각서 내용 일부를 밝혔다. 외부 노출을 꺼리는 삼탄의 유상덕(46) 회장은 인터뷰를 사양했다.

삼천리그룹의 창업과 공동경영이 반세기를 맞았다. 지난 1월 LG그룹의 허씨와 구씨 집안이 분리되면서 중견그룹 이상의 규모에서 동업을 유지하고 있는 기업은 삼천리가 유일하다. 현대그룹에 이어 두산그룹까지 '형제의 난'으로 홍역을 앓고 있어 삼천리의 대를 이은 반세기 동업정신이 더 주목을 받는다.

삼천리의 현재 주사업은 도시가스지만 출발 때는 연탄 '만들기'와 '배달'이었다. 6.25전쟁 당시 함경남도 함흥에서 피난 온 고(故) 유성연 회장과 고(故) 이장균 회장 부부가 1955년 생업을 위해 함께 시작한 일이다. 그 시대엔 연탄가루를 가져와 틀에 넣고 찍어 말린 뒤 배달도 직접해야 했다. 두 집안 부부 네 사람이 연탄 수레를 끌고 밀면서 시작한 사업은 반세기가 지난 현재 매출 2조원대의 에너지 그룹으로 성장했다. 이제는 창업 2세인 아들 회장들이 공동 경영의 대를 이어오고 있다.

이 회장은 "동업의 뜻을 지키기 위해 5개 그룹사의 지분을 주식수까지 똑같이 유 회장과 나눠 가지고 있다"며 "신속한 의사결정과 효율을 위해 그룹사를 분리 경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신규사업 진출은 양 회장 합의로 결정된다. 선대 회장의 관할 구역 그대로 이 회장은 ㈜삼천리(도시가스회사)와 삼천리ES(천연가스 냉난방기 판매), 삼천리ENG(도시가스 배관설비)를, 유 회장은 삼탄(유연탄)과 삼천리제약을 맡고 있다. 이 회장은 "선친은 '출자를 6 대 4로 하더라도 이익은 5 대 5로 나눠라'는 말로 동업의 정신을 강조했다"며 "동업이 다음 세대에도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동업에 어려움은 없었을까. 25년 전 인도네시아 유연탄 광산에 진출할 때의 일이다. 이 회장은 "당시 두 어른이 인도네시아 투자 건에 대해 공개석상에서 한 시간이 넘게 싸웠다"며 "그땐 정말 동업이 끝나는 줄 알았다"고 회상했다. 이듬해 코크스 사업에 진출할 때는 이 회장(창업 1세)이 유 회장을 17번이나 찾아가기도 했다.

이 회장은 "동업이란 게 의사결정을 하기가 힘들고 시간도 많이 걸려 어려움이 많다"면서도 "서로 꼼꼼히 챙길 수 있고 힘이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다"고 말했다.

삼천리그룹은 창업 반세기를 맞아 회사를 도약시킬 전략을 세우고 있다. 이 회장은 "2010년 매출 3조원, 순익 1000억원을 목표로 사업구조를 짜고 있다"며 "천연가스 도입사업, 가스전.유전 투자, 도시가스회사 인수, 비에너지 부문 신사업 진출 등이 검토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이 같은 계획도 두 회장이 합의한 것들이다.

최준호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 바로잡습니다

9월 12일자 E4면 '연탄불처럼 피운 우정경영 50년'기사의 제목 중 '…이만득 사장'을 이만득 회장으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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