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저분해서 좋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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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옆집에 앞니 빠진 개구장이 꼬마녀석이 있다. 이 꼬마는 밥만 먹으면 우리집 벨을 누른다.일요일 같은 땐 『어, 아직자네. 순 게으름뱅이들 아냐』하곤 아이들 방에서 이것 저것 만져가며 혼자서 논다. 원래부터 아이들을 귀여워하던 터라 싫지않게 대해 주었더니 아예 자기집 출입하듯 한다.
한번은 문을 열어주었더니 들어오면서 한다는애기가 『아줌마집 참 좋아요』 『그래,어디가 그렇게 좋으니』 『있잖아요, 지저분해서 참 좋아요. 우리 집엔 엄마가 어지르면 야단치거든요. 그런데 아줌마네 집에서는 지저분해도 야단치지 않거든요.』
또 이런 얘기들도 한다.
방학이 되어서 조카들이 놀러 왔다.
아이들 끼리 여럿이 모여 우리 아빠는 맥주를 좋아하고, 또 다른 아이는 우리아빠는 소주를 좋아하고, 하면서 자기아빠의 기호품들을 이야기하더니, 양주가 제일 독하고, 그 다음이 소주, 그다음이 맥주라면서 그럴듯하게 자기들끼리 결정을내린다.
『그러면 작은 이모는 맥주인가봐. 그러니 저렇게 마음도 좋고 착하지. 공부하라는 소리도 않고 이렇게 어질러도 가만 두고. 그렇지?』
『그럼 우리 엄마는 소주일거야. 얼마나 독한지 매일 공부소리만 입에 달리고, 야단만 치고.』
이렇게 한마디 씩이 아닌가.
그랬더니 막내아이 말이 걸작이다.
『야,너희들 멀리서 왔으니까 손님이라서 그렇지 가고 나면 우리 엄마도 독한 소주가 될거야.』
나는 이런 아이들을 어떻게 생각해야할지 망설여진다. 오늘날의 세대는 과장해서 스승이 없는 세대라고까지 이야기한다. 한달이 틀리고, 일년이 틀리는 현시점에서 볼 때,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은 정말 산골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텔리비전이나 라디오를 통해, 또 학교생활에서 모든 것을 너무나 빠른 속도로 받아 들이는 아이들을 볼 때, 변화없는 10년이 나올지, 변화무쌍한 10년이 나올지 나같은 사람으로서는 짐작하기도 어려울 것같다. 김영순<대구시남구대명9동514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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