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불안감 동시에 표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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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강청과 장춘교에 대한 감형조치는 현 중공지도부의 자신감과 불안감을 동시에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고 모택동 주석의 미망인 강청(69)과 전부수장 장춘교(65)는 지난66∼76년의 문화대혁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76년10월 등소평 일파에 의해 「국가전복 및 반 혁명기도혐의」로 체포돼 81년1월25일 사형선고를 받고 복역 중이었다.
2년간의 집행유예 기간이 만료된 25일 중공최고인민법원은 이들 두 사람이 『극악한 방법으로 회개할 것을 거부하지 앓았다』고 지적, 종신형으로 감형할 것을 결정했다.
어떤 정치범이건 처형되지는 않는다는 중공당의 불문율이 다시 확인된 셈이다.
그러나 이들이 그 동안 취해온 태도로 보아 이번의 감형조치는 「정치적 결단」에 의한 것이라고 평가해야 할 것 같다.
법률적으로는 회개의 기미가 없으므로 두 사람의 행동은 감형을 받기가 어렵다.
강청은 81년1월25일 생중계를 통해 전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재판관과 검찰 측을 가리켜 『당신들은 나를 죄인으로 삼아 모택동 주석을 바보취급하고 수많은 인민이 참가한 문화대혁명을 어리석은 일로 만들려 하고있다. 당신들이야말로 수정주의자들이다』라고 항변했었다.
10명의 피고인가운데 시종침묵으로 일관한 장춘교의 태도도 마찬가지였다. 복역 중에도 강은 변함없이 의기 ???고 장 역시 공판당시처럼 침묵을 지키면서 회고록을 쓰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런데도 중공당국이 이들에게 『회개할 것을 거부하지 않았다』는 그야말로 감형을 해주지 않으면 안 되는 듯한 의도적 이유를 들어 감형조치를 내린 것은 현 중공지도부가 처해있는 정치 때문으로 해석되고 있다.
등소평을 중심으로 한 중공의 현 집권세력은 그 동안의 재건을 통해 문화대혁명과 모택동의 과오를 중공 인들에게 어느 정도 납득시키는데 성공했으며 실제로 모의 후계자인 화국봉을 권력의 자리에서 축출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공지도부가 굳이 강청 등의 사형을 고집, 강을 순교자로 만들고 아직도 원로간부층에 남아 있는 모택동 추종세력과 좌파의 반발을 야기 시킬 모험은 할 필요가 없었을 것으로 판단한 듯하다.
강청의 7O평생은 애정을 갈구하는 한 여성으로서의 모습과 권력을 향한 무서운 집념으로 점철돼있다.
l914년 산동성에서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난 강은 일찌기 부모를 여의고 외할머니 곁에서 자랐다. 어느 날 극단을 따라 집을 나선 그녀는 강생이라는 지주의 눈에 띄어 첩으로 들어앉게 된다. 주위의 권유로 연극학원에 발을 들여놓은 강은 「입센」 의 『인형의 집』 에서 「노라」역을 맡아 배우로서의 길을 시작한다.
40년 어느 봄 날 강은 평소 동경해 오던 모택동을 어느 강연장에서 만나 애틋한 감정을 갖기 시작한다.
결국 21살이나 위인 모는 3번째 부인인 하자정과 이혼, 45년 9월 강을 아내로 맞아들였었다. <이재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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