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 고적대 '승리의 행진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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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 온양한올고 마칭밴드부 학생들과 지도교사 원종배씨(둘째줄 왼쪽에서 첫째).

1일 전북 익산에서 열린 문화관광부장관기 전국 마칭밴드 경연대회에서 작은 이변이 일어났다. 고등부 최우수상 세 팀 중 하나로 충남 아산의 온양한올고교팀이 뽑힌 것이다. 올 3월 조직된 신생팀의 개가에 대회 관계자들과 참가팀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실업계 여고인 이 학교에 마칭밴드부가 조직된 것은 이 학교 박우승 교장이 "우리 지역 행사에 매번 다른 지역으로부터 고적대를 불러서야 되겠느냐"며 아산시에 지원을 요청한 게 계기가 됐다. 학교 측은 3월에 관악기를 전공한 원종배(34) 교사를 지도교사로 초빙하고 밴드부를 구성했다. 하지만 시의 재정 지원이 늦어져 악기는 마련하지 못한 상태였다. 26명의 단원 가운데 관악기 파트는 마우스 피스(악기의 주둥이 부분)만 갖고, 타악기는 스틱(북채)만으로 연습했다.

악장 박차니(17.2년)양은 "영화에서 본 트럼본 부는 모습에 반해 밴드부에 가입했다"며 "하지만 악기가 없어 한동안 마우스 피스만 불어야 했다"고 말했다. 작은 북 담당인 한아름(16.1년)양 역시 "학교에선 스틱으로 고무판을 치고, 집에선 이불을 두드렸다"고 했다.

처음엔 "여자애들이 웬 딴따라 짓이냐"며 반대하던 부모들도 학생들의 열성에 두 손을 들었다. 윤소진(17.2년)양의 어머니 오성란(45)씨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습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바뀌었다"며 "대학에서 타악기를 전공하고 싶다고 해 적극 지원해 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7월 6일 학수고대하던 악기가 배달됐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면서 합숙에 들어간 단원들은 오전 5시30분에 일어나 오후 11시까지 하루 15시간씩 맹훈련을 했다. 비제의 '카르멘'중'투우사의 노래'등 세 곡을 선택해 밤낮없이 연습했다.

원 교사는 "아이들과 함께 최민식씨가 주연한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 비디오를 빌려보기도 했다. 강원도 벽지의 중학교 밴드부가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걸 보며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글.사진=조한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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