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감독 후보 '채점표 유출'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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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축구 국가대표 감독 선임을 둘러싸고 혼선과 마찰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한축구협회가 철저한 비공개 원칙을 천명했음에도 기술위원회 회의 자료로 추정되는 문서가 유출되고, 협상 대상자가 대부분 공개됐다.

SBS는 5일 기술위 회의 문건을 입수했다며 딕 아드보카트(네덜란드) 감독이 21명의 1차 후보군 중 최고 점수(7점)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마르셀로 비엘사(아르헨티나) 감독은 5점, 베르티 포크츠.루디 푈러(이상 독일), 필리프 트루시에(프랑스) 감독의 이름 옆에는 ×표시가 돼 있었다는 내용 등 21명의 명단을 모두 공개했다.

이에 대해 강신우 기술위 부위원장은 6일 "문건 유출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보도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한 기술위원은 "최종 후보 7명의 명단은 이회택 기술위원장만 안다. 유출됐다면 이 위원장이 했다는 얘긴데, 절대 그럴 분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2일 회의 때 '해당 후보를 잘 알고 있느냐'에 대해 거수를 해 21명 중 12명을 추려냈다. 보도된 숫자는 점수가 아니라 그때 손을 든 위원의 숫자일 수 있다"고 전했다. 12명에 대해 위원 각자의 의견을 모아 기술위원장에게 전달했고, 7명이 최종 협상대상자로 결정됐다는 얘기다. 푈러 감독의 경우 본인이 고사해 제외했다고 한다.

결국 기술위원 중 한 명이 오전 회의 내용을 메모해 유출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협회가 공언한 '비공개 원칙'은 물 건너갔고, 협상 대상자와 감독 선임 과정이 모조리 노출됐다. 축구협회의 어설픈 일처리로 감독 선임 협상은 또다시 난항을 겪게 됐다.

아드보카트 감독이 우선협상 1순위로 정해졌다면 문제는 더 커진다.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04) 네덜란드 대표팀을 맡았던 아드보카트는 한 달 전 아랍에미리트(UAE) 대표팀 감독에 취임했다. 2002 월드컵 당시 한국팀 수석코치였던 핌 베어벡도 코치로 함께 갔다. UAE 축구협회는 "이제 막 대표팀을 맡은 사람을 빼내 가려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제2의 메추 파동'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5월 축구협회는 UAE 알아인 클럽 감독이던 브루노 메추(프랑스)를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했다.

그러나 성급한 발표로 협상의 주도권을 메추에게 뺏겼고, 메추가 몸값을 올리는 바람에 영입에 실패해 대타로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을 데려왔다. 아드보카트의 에이전트인 존 스미스는 5일 네덜란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8월 말 대한축구협회와 접촉한 건 사실이지만 1개월여 전에 UAE와 계약한 그가 한국행을 선택할지는 미지수"라고 밝혔다. 반면 보비 롭슨(잉글랜드) 감독은 "내겐 돈보다 도전이 가장 중요하다"며 한국 감독직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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