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즐겨읽기] 청년이여, 시대의 엉덩이를 걷어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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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
데라야마 슈지 지음, 김성기 옮김, 이마고, 344쪽, 1만2000원

데라야마 슈지(寺山修司.1935~83)는 마흔여덟 짧은 지상에서의 삶을 반항아로 살았다. 일본 연극계가 그에게 붙인 '영원한 전위'란 표현 그대로 기성질서를 무너뜨리는 일에 앞질러 뛰어다니다 갔다.

"인간은 불완전한 시체로 태어나 평생에 걸쳐 완전한 시체가 된다"는 자신의 독설을 빌리자면, 그만큼 완전 연소로 시체가 된 이도 드물다. 시인.극작 연출가.영화감독.평론가.방송인.경마해설가 등으로 활동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한곳에 가만히 있는 것을 싫어했어요. 언제나 이곳이 아닌 다른 장소를 동경하고 있었지요."

데라야마가 1967년에 발표한 평론집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는 그가 같은 제목의 연극과 영화를 만들었을 만큼 '데라야마 식' 도발과 역설로 똘똘 뭉친 대표작이다. "나는 빠른 속도를 동경한다"는 첫마디부터 일상에 절어있던 독자를 들쑤시고 일으켜 세운다. '아버지'라는 단어가 대표하는 주류와 규범과 기득권자를 향한 야유는 너무 통렬해서 눈물이 찔끔 날 지경이다. 이를테면 "청년이여, 큰 엉덩이를 품어라"고 권하며 성문화나 성예술이 상당히 빈약하다고 꾸짖는 대목은 지금 봐도 신선하다. "성을 해방시킬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청년들의 특권"이라며 '성경분리(性經分離)'를 외치는 그는 "낡은 겉옷이여, 안녕"을 외친다.

데라야마가 남긴 한마디 한마디는 피를 끓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를 인터뷰했던 한 신문기자가 "데라야마가 이야기하는 말을 전부 활자로 만들고 싶었다"고 회고할 정도다."난 역사 따윈 싫다. 추억이 좋다. 국가 따윈 싫다. 사람이 좋다." "눈알 따윈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혁명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중요한 건 심장뿐이다." "일일일노(一日一怒), 나는 이 말을 동시대 사람들을 위한 교훈으로 삼고 싶다. 좀더 당당하게 화를 내보지 않겠는가. 아버지의 엉덩이를 걷어차고, 공무원들을 물고 늘어지고, 모순과 부조리를 내치면서."

데라야마는 60년대에 시작한 일본 소극장 운동의 제1세대다. 그의 죽음과 함께 일본 소극장 연극의 제1막이 내렸다. 일본 실험연극의 중심에 그가 서 있다. 그는 '건물로서의 극장은 연극을 가두는 감옥'이라고 불렀다. 데라야마가 관객을 버스에 싣고 거리 곳곳을 돌아다니며 일상에 연극을 가지고 들어가는 '거리극'을 만든 까닭이다. "누구나 다 배우인 연극, 극장이 없는 연극과 모든 장소가 극장인 연극, 관객이 없는 연극과 서로 관객이 되어 주는 연극"이 그가 꿈꾼 연극이었다.

데라야마는 정치를 통해서가 아니고, 연극을 통해 사회를 변혁하려 했다. 연극이 지닌 큰 힘을 그만큼 절실히 느끼고 간절히 키워간 사람도 드물다. 연극의 주술적인 매개 작용을 통해 사회전복을 겨냥했던 데라야마는 지금도 "거리로 나가자 (www.terayama.co.kr)"고 말한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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