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거울 철 되면 생각나는 어릴 때 감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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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나는 감을 좋아한다. 썩 베무는 단감도 좋아하지만 ㅇ녀하고 부드럽게 배어드는 홍시의 맛도 좋아한다.
이것만은 소녀일 때부터 변하지 않고 이어온 유일한 입맛이기도 하다. 고향 집에는 커다란 감나무 한 그루가 마당에 있었다. 감나무와 감꽃·침시·홍시·곶감으로 연결되는 그 시절의 기억들은 특히 요즈음 같은 계절이면 불쑥 불쑥 튀어나와 온 몸을 아른한 그리움으로 감싸버리고 만다. 감은 참으로 여러가지모습으로 변신을 해 주었다.
아직은 덜 익어서 떫은 풋감일 때는 항아리에 집어넣어 두고 2, 3일 지난 후 꺼내 먹어보면 신기하게도 단맛이 돌아서먹기 좋게 되어 있곤 했다. 그 감을 다 먹어갈 무렵이면 가을도 깊어지고 감도 붉게 익어갔다. 익은 감은 그대로도 먹지만 대개는 곶감으로 만들었다. 장대로 따내려서 감 껍질은 길게 벗겨 따로 말려 떡에 넣어 찌기도 하고 새들새들 말랐을 때 그대로 쫄깃한 맛을 즐기기도 했다.
껍질을 벗긴 감은 채반에 넒게 펴서 말리는 것으로 곶감 만드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때로는 싸리나무 꼬챙이를 다듬어서 감을 꿰기도 하는데, 볕 좋은 담에 기대어 두고 매일 주물러서 말랑하게 고루 마르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정이었다.
어쩌다 잘못 말려진 것은 아이들의 차지로 돌아오기도 했다. 곶감보다는 이 때의 맛이 더 좋았던 것같이 생각이 들 정도로 기막힌 맛이었다.
추운 겨울 이불 속에 몸을 파묻고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홍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 그맛」하고 생생히 되살아나는 달콤하고 산뜻함이 배어든다.
이제 나는 슈퍼마킷에서도 사먹어 보고 경동시장에서 실컷 먹고 1백원만 내라는 다 찌그러진 홍시도 먹어보지만 어쩐지 옛날 그맛을 느낄 수 없어서 아쉬움을 느낀다.
감꽃이 떨어지면 머긱도 하고 실에 꿰어 목에 걸고 다니던 기억으로부터 연결된 감의 변신들인 침시·홍시·곶감이 아닌 단순한 감 자체만을 보며 먹게 된 세월의 변화에도 그 탓이 있는 것 같다.
감나무 집이라는 어휘가 찬란하게 느껴지는 시대에 살고 있는 작은 감상일까.

<서울 강남구 잠원동 대림아파트 3동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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