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전 거울로 오늘을 보다] 14. 개화기의 列强 인식 <3>일본-허동현 교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한국인들은 학교 교육을 통해 과거 일본이 저지른 악행을 누누이 배우기 때문에 선험적으로 그들을 증오하는 마음을 품게 됩니다. 반면 개화기 이래 한국인들은 일본의 앞선 문물과 제도를 본떠 왔기에 알게 모르게 그들을 선망하는 마음도 갖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선험적 지식에서 우러나오는 증오와 체험을 통해 갖게 된 호감이 충돌하는 이율배반적 일본관을 갖고 있는 것이지요.

왜 한국은 일본을 따라 배우면서도 고마워하지 않는 걸까요? 일본은 왜 독일처럼 과거의 잘못에 대해 진솔하게 반성하지 않는 걸까요? 한.일 두 나라도 독일과 프랑스처럼 해묵은 갈등과 반목을 털어버리고 화해와 연대의 새 시대를 열 수는 없을까요? 독일과 프랑스의 사례 외에도 우리와 처지가 비슷한 약소국 핀란드의 경험은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핀란드는 1293년에는 스웨덴 왕국에, 1809년에는 러시아에 합병되었다가 1917년 제정 러시아가 무너지는 틈에 독립했습니다. 이후 핀란드는 스탈린 시대 소련과 힘겨운 전쟁을 치러 주권을 지켰고, 냉전의 와중에서도 균형잡힌 중립정책을 펼쳐 번영을 일궈왔습니다.

2002년 겨울 헬싱키대학에서 열린 학술회의 당시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때 저는 헬싱키 시내 한복판에 서 있는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1818~1881)의 동상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스웨덴어가 핀란드어와 함께 공용어로 쓰이는 것을 보고 다시 한 번 충격을 받았지요. 마치 서울 한복판에 메이지 천황의 동상이 서 있고 일본어가 우리말과 함께 국어의 지위를 누리는 것과 같았으니 말입니다.

속사정을 들어보니 우리들이 핀란드 사람들보다 속이 좁아서만은 아니더군요. 알렉산드르 2세의 동상은 러시아에도 없던 의회를 식민지에 허용해 자치권을 보장해준 데 대한 감사이자 그의 아들이 행한 폭정에 항의하는 표시로 세워진 것이며, 스웨덴어를 공용어로 삼은 것도 스탈린 시대 소련과 맞서 싸울 때 수십만의 핀란드 아이들을 맡아 돌보아준 스웨덴 시민들의 배려에 대한 보답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서울에서 일본 지도자의 동상을 찾아볼 수 없고, 일본이 한국의 근대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음에도 존중받지 못하는 이유가 자명해지지 않습니까?

일본은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기 동아시아에서 영국과 미국의 이익을 지켜주는 '집 지키는 개(番犬)' 노릇을 한 측면도 부정할 수 없고, 또 어떤 제국주의 나라보다도 더 철저하게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혹독하고, 조직적이며, 강제 동원적인 식민통치'를 펼쳤습니다. 그러니 일본 덕에 근대화되었다는 말에 공감하는 한국 사람이 드문 것이 우리들의 편협함 때문만은 아닌 듯싶습니다.

나아가 전후 일본의 부흥 역시 6.25전쟁 특수, 즉 조선의 아픔을 딛고 섰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재일동포를 차별하는 일본의 태도에서는 존중받을 만한 선진국의 면모는 찾아보기 힘들더군요.

한국인은 프랑스가 독일에게서 받은 것과 같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과를 일본에게 받지 못했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한국 사람들이 적개심을 품게 된 것은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오만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한편 독일이 프랑스에 용서를 구하고, 알렉산드르 2세가 핀란드의 자치를 보장한 이면에는, 그들보다 먼저 시민사회를 이룬 선진 프랑스와 핀란드에 대한 열등의식과 수치심도 작용했으리라고 봅니다.

사실 독일도 비서구 국가에는 과거의 악행에 대해 사죄한 적이 없으니 말이지요. 프랑스나 핀란드가 그들의 점령자에게 충분히 존중받을 만한 대상이었던 데 비해 한때 일본의 스승이었던 우리들은 그렇지 못했던 것 역시 사실이니 일본만을 탓할 수는 없을 것도 같습니다.

오늘의 우리들이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문화가 동류(東流)하던 옛 시절의 영광만을 자랑하며, 오늘날 일본인들에게 '유의미한 타자'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한다면, 우리는 결코 일본 사람들과 당당히 연대하고 협력하는 새 시대를 열지 못할 것입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