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월 시 목판화전|한국적 정감이 넘치는 분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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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먼훗날 당신이 찾으시면/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당신이 속으로 나무리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그래도 당신이 나무리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먼후일 그때에 「잊었노라」』 애잔한 소월의 시가 적힌 패널 곁에 희고 검은 세마리 새가 푸른 창공을 날아가는 화폭이 걸려있다. 아마도 새는 「당신」을 그리다 사위어간 「나」 의 모습은 아닐는지.
소월의 시에 서양화가 최낙경씨의 목판화를 조화시킨 「소월 시 목판화전」(14일까지·교보문고)은 근대이후 처음으로 시와 그림의 세계를 이어놓았다는데 의미를 지닌다.
총35편의 소월 시에 맞춰 35개의 목판화를 제작, 이중 25점이 출품중이다.
화가 최씨는 『제작하는데 3개월이 꼬박 걸렸다』 면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시를 통해 원작자의 생각을 아울러 고려해야한다는 점에서 평소의 작업보다 어려웠다』고 말한다.
작품 『담배』 『밤』 등 일부만을 제외하고 모두 다색판화로 되어있는데 목판이 주는 한국적 느낌이 소월이 지닌 한국적 정감과 잘 어울려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해내고 있다.
『금잔디』에 붙여 제작한 만화도 돋보이는 작품중의 하나. 고목 뒤로 넓게 깔린 잔디밭의 한편에 한 마리의 새가 주둥이를 추켜든 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이 그림은 진한 황금색을 주조로 하여 금잔디의 느낌을 강하게 전달하고 있다.
『나의 긴 한숨을 동무하는…』으로 시작하는 『담배』 와 나란히 걸린 검은색 단색 판화도 무척 인상적인 작품.
머리를 살짝 외로 꼰 채 한쪽 눈을 지그시 감고 담배를 피워 문 남자의 모습에서 『타 붙고 없어지는 불꽃』 속에 『나의 하염없이 쓸쓸한 많은 날』 이 지나가기를 기원했던 소월의 고뇌가 생생히 되살아나고 있다.

<홍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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