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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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78년의 일본 자민당총재 예비선거에서 당시 「오오히라」간사장과 대결했다가 2위로 패배한 「후꾸다」수상은 개표결과를 보고 『하늘의 소리는 하늘의 소리로되 이상한 소리로다』라는 말을 남기고 본선진출을 포기, 후보를 사퇴해버렸다.
그의 말은 당시 예비선거의 타락성을 한마디로 나타낸 것으로 지금도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자기편 당원을 늘리기 위해 『개나 고양이까지 입당시켰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 그 때의 선거전 양상을 짐작 할만 하다. 「스즈끼」총재 후임자를 뽑는 이번 예비선거는 아직 초반전이므로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할 수 없으나 벌써부터 매수설·음모설 등 온갖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고소사태까지 빚고있는 것으로 보아 이전투구의 양상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이번 선거전이 국민들의 눈에 어떻게 비치고 있느냐는 지난 10월 24일 방송된 일본 TBS-TV의 시사방담프로에 나온 「호소까와」·「후지와라」 두 평론가의 대담내용을 보면 알 있다.
▲후지와라=『나한테 들어온 정보로는 「후꾸다」(전 수상)도 「기시」(전 수상)도, 「고오모또」(경제기획청장관·총재후보)에게 매수됐다는 얘기가 있다더군.』
▲호소까와=『「돈을」 많이 풀고있어. 그게 억단위야.』『어느 무소속의원한테 밀사가 와서 「우리선생을 도와주시오. 3백억엔을 준비해놓고 있으니까 얼마라도 써 주십시오」하더라는 거야.』
▲후지와라=『「나까가와」(과학기술처장관·총재후보)가 l2명의 파벌로 50명의 추천을 받은 것은 사람을 빌리고, 운동비는 전부 「고오모또」한테서 나오고 있어.』『이 바보 같은 소동에 「고오모또」진영이 준비한 3백억엔이라는 돈이 춤춘다는 것이지.』
이 같은 대담내용의 진위는 알 길이 없지만 매수선거의 원흉으로 찍힌 당사자들이 발끈, 두 평론가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함으로써 이 대담은 법정싸움으로 번지게 됐다.
「나가다쬬」로 불리는 일본정가주변에는 총재후보 조정과정에서부터 이와 비슷한 루머들이 끊임없이 난무하고 있다. 『이번에 은퇴하는 모참의원의원은 「노후보장 ×억엔」을 받고 모 후보를 지원키로 했다』,『빚으로 고민하던 모참의원의원이 최근 얼굴을 활짝 펴고 다닌다더라. 빚을 갚은 수표는 모 실력자의 거래은행에서 발행된 것이더라』는 등등.
모 파벌은 60명의 국회의원을 아까사까의 요정에 불러 3백만엔씩을 차비명목으로 뿌렸다고 입에 한동안 오르내렸다.
11월 23일이면 투표가 실시되고 25일이면 제1l대 총재가 새로 선출된다. 그러나 이번에도「하늘의 소리」가 이상하게될 소지는 얼마든지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늘의 뜻이 돈에 매수돼 이상한 소리를 내는 일이 거듭된다면 일본이 자랑하는 이른바 일본식민주주의 자체에 조종이 울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이 점점 늘고있다.

<신성순 동경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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