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동품밀매의 "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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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보물급문화재 일본밀반출 기도사건으로 구속된 신기한씨(62·한국고미술상 중앙회 회장)는 골동품 업계의 대부(대부)였다. 휘하에 10여명의 연락책을 거느리고 1백여 큰고객을 단골로 휘어잡아 골동품 업계를 떡주무르듯 해왔다.
현재 우리나라 골동품상들은 신씨와 K모씨등의 양대산맥으로 갈라져 있다는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20대초반에 골동품상의 사환으로 시작, 단한번도 체계있는 공부를 한일이 없었으나 실전(?)에서 쌓은 감정실력은 자타가 공인하고있다.
공항이나 항만의 감정관들이 의심쩍은 물건을 적발했을때 그에게 감정을 의뢰하는 경우도 있었고 대학박물관 또는 다른 골동품상들도 진위(진위)판별이 어려울땐 그의 판단을 받아들이는등 최고권위로 통했다.
함께 구속된 이경미씨(32·여)가 밀반출한 신라금동불상도 신씨의 감정소견에 따라 비문화재로 진단받은것.
신씨는 미리 금도금을 입혔다가 김포공항 출발직전 감정때 손톱으로 긁어 도금입힌것을 벗긴뒤 「섭치」(값이 안나가는 모조품) 라고 밝히고 비문화재 확인증을 받아냈다.
신씨의 감정소견 한마디는 더이상 따져볼 필요가 없을만큼 절대적이었다.
안동이 고향인 신씨는 일제때 징용으로 일본에 끌려갔다.
이번 사건의 신라금동불상과 토기의 원매자인 「다마바야시」(옥림)도 바로그때 알게된 인물이다.
신씨가 골동품에 손을댄 것은 해방후 귀국하고서였다.
30년전 「상고당」이란 골동품점을 차려 운영해오던 신씨가 황금시대를 만난것은 70년대 외국관광객 러시와 화폐가치보존책으로 골동품수집이 붐을 타면서부터.
신씨는 72년 자신이 살던 서울충무로집을 헐고 4층빌딩을 지어 1층에 「예당」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당시 업계의 거물이었던 K모씨와 쌍벽을 이루게 되었다.
신씨의 재산은 신당동에 대지 2백여평의 2층양옥집을 비롯, 고가(고가)의 소장품등 수십억대로 알려지고있다.
신씨가 한국고미술상중앙회 회장을 맡은 것은 3년전. 전회장 K모씨와 피나는 주도권 쟁탈전을 벌인끝에 골동품업계의 총수자리를 차지했다.
신씨는 골동품가의 전반적 불경기와 당뇨병등 병세까지 겹쳐 어려옴에 부닥치자 일인 「다마바야시」와 손을 잡고 밀반출을 본격화한것으로 알려졌다.
수배중인 박준재씨는 「해미」 박사장으로 통하는 알부자로 전직 K모장관과 처남매부관계이며 전고려제지 김원전사장의 소장품 2점을 매수한 1차거래자이다. 골동품은 일단 바다만 건너면 값이 10배이상 보장되기 때문에 밀반출은 결사적.
피의자중 윤철수·신씨등 주범들은 약속장소에서 만날때 호텔15층에서 만나기로 했다면 엘리베이터로 17층에서 내려 2층을 걸어내려가는등 조심성을 보였다.
특히 골동품 피의자들은 자백안하기의 선수들.
물건자체가 워낙 고가이기 때문에 징역 몇년을 살고나오더라도 그 한점의 물건만 임자를 제대로 만나면 다시 재기할수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문화재가 고가의 동산으로 거래대상인 이상 팔고 팔리는 것은 어쩔수 없다하더라도 그겻이 국내에서 이루어진 거래라면 국내에 존재하지만 해외로 반출되는것만은 막아야 되겠다는게 이번 사건이 준 교훈이다. <신성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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