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커룸 내주고, 화장대 채워주고 … 여긴 어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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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한강시민공원에서 달리기 전 잠시 쉬고 있는 2030 직장인들. 뒤로 로커가 보이지만 이곳은 피트니스 센터가 아니라 신사동의 브룩스러닝 매장 2층이다. ‘런 해피’ 프로그램에 신청한 사람들은 매주 목요일이면 매장에서 옷을 갈아입고 같이 뛴다. 매장에서 물건을 구입하거나, 이용료를 낼 필요가 없다. [김경록 기자]

지난달 27일 오후 7시30분 서울 가로수길의 한 러닝용품 매장 안으로 20~30대 남녀 직장인 20여 명이 속속 모여 들었다. 이들은 익숙한 듯 매장을 가로질러 곧장 2층 익스피리언스 존(experience zone·체험장)으로 향했다. 러닝화와 운동복을 사러 온 게 아니라 옷만 갈아입으려고 매장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물건 파는 매장을 탈의실처럼 쓴다니, 대체 무슨 얘기일까.

 이들은 모두 브룩스러닝이 지난 9월부터 진행하고 있는 ‘런 해피’ 프로그램 참가자들이다. 매주 목요일마다 이곳에 모이는데, 매장 안 로커에 입고 온 옷을 넣어두고 러닝복으로 갈아입은 뒤 밖으로 나가 다 함께 뛴다. 매장에서부터 한강 둔치를 돌고 오는 6㎞ 코스다. 업체 측은 달리기 전에 간단한 간식까지 준다.

 박유라 브룩스러닝 PR매니저는 “글이나 이미지를 통한 보여주기식의 기존 홍보 방식보다 달리기를 직접 체험하게 하는 게 우리 브랜드를 알리는 데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1 화장품이 다 갖춰져 있어 누구든 무료로, 그것도 맘 편하게 직접 메이크업을 할 수 있는 바비브라운 매장. 2 인테리어 업체 ‘까사미아’ 매장에서 파는 가구·소품으로 채워진 호텔 라까사 객실.

 이런 체험형 매장은 점점 느는 추세다. 과거엔 마트 시식코너처럼 자사 제품을 직접 경험하게 한 후 직접적인 구매를 유도했다면 지금은 전보다 훨씬 덜 노골적이고 더 세련된 방식이다. 브룩스러닝뿐만이 아니라 지난 9월 압구정동에 문을 연 아웃도어 업체 살로몬 매장도 전체 3개층 매장 가운데 한 개층(3층)을 달리기 프로그램 참가자 모임 장소로 활용(12~2월 제외)한다.

 인테리어 업체는 똑같은 소품을 한데 모아 매대에 전부 올려놓고 파는 게 아니라 전체적인 공간 연출을 제시한다. 분위기를 체험하게 해서 그 안에 놓여있는 제품을 사고 싶게 만드는 전략이다. 심지어 까사미아는 3년 전부터 강남구 신사동 매장 바로 옆에 부티크 호텔 ‘라까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 호텔 로비와 객실에 놓여있는 가구는 다 까사미아 제품이다. 호텔 1층 레스토랑인 ‘까사밀 까페’는 식기까지 전부 이 업체 제품으로 채워져 있다. 호텔이나 카페에서 사용하다가 마음에 들면 바로 옆 매장에서 구입할 수 있다는 얘기다. 조현정 호텔 라까사 마케팅 팀장은 “스위트룸에 묵었던 부부가 그 공간을 채운 우리 브랜드 제품을 일괄 구입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화장품 업계는 화장품 특성상 오래 전부터 매장에서 화장품을 직접 써볼 수 있게 테스트 제품을 따로 갖춰놨다. 하지만 최근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매장을 아예 자기집 화장대처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추세다. 예컨대 바비브라운은 올 3월부터 3개 매장에서 ‘셀프 메이크업 바’를 운영 중이다. 김기영 바비브라운 홍보팀 대리는 “고객이 아무 부담없이 제품을 마음껏 사용해볼 수 있게 하려는 의도”라며 “당장 구매로 이어지진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우리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점원은 근처에 서있지도 않았다.

 전미영 서울대 소비자학과 연구교수는 “온라인 시장이 커져가는 상황 속에서 오프라인 매장의 장점을 극대화한 마케팅 방식”이라며 “고객 입장에서는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할 수 있고 매장 입장에서는 고객 발길을 이끄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조한대 기자 ch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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