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걸음치는 한국 마라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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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국 마라톤은 꽤 침체의 늪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17일의 전국 체전 마라톤 경기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다.
대회의 우승기록이 2시간 21분 3초로 한국 기록 2시간 16분 15초보다도 무려 5분이 뒤졌고 체전 기록에도 3분여나 뒤졌기 때문이다.
그 기록은 열성 팬들의 성원과 마라톤 중흥에 대한 국민의 기대를 모두 저버린 기록이다.
비록 아시안 게임에 출전할 3명의 대표선수가 빠진 경기이기는 했으나 우리 마라톤의 현저한 낙후를 실감케 하기에 충분한 실적이기도 했다.
우리 마라톤이 아직 20분대에서 지척대고 있는 사이에 세계의 마라토너들은 일취월장의 기세로 기록을 경신해 가고 있다. 살라자르의 2시간 8분 13초라는 세계기록도 위태위태하게 유지될 뿐이다.
같은 체력 조건을 가진 동양권 선수들도 9분대는 열 손가락에 들 정도다. 체구가 작은 일본선수들이 세계기록에 육박하고 있는 것도 부럽지만 북한선수들이 최근 북경의 공산권 마라톤에 우승하고 있는 것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우리의 마라톤 낙후엔 분명 문제가 있다.
물론 그 동안 마라톤 중흥을 위한 대책이 없었던 건 아니다. 또 결코 적지 않은 선수들이 기록 갱신의 의욕을 가지고 마라톤 경기에 나섰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 마라톤 중흥의 기금은 6억원은 넘어섰지만 그 거액의 혜택을 받을 선수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기록갱신은 고사하고 풀 코스를 완주하는 선수조차 20∼30명에 불과하다는 한심한 실정이다.
이는 마라톤 선수의 절대 부족을 의미한다.
그 선수부족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마련된 지난봄의 서울 마라톤엔 7천여 선수가 참여했고 거기서 16분대의 신인 김종윤 선수가 발굴되었던 것은 기억에도 새롭다.
그 점에서 보면 선수의 저변확대는 마라톤 중흥의 제 1차적 과제다. 우선 어린이들부터 달리기를 생활화하는 노력이 있어야겠다는 뜻이다.
선수의 발굴은 적지 않은 대회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선수의 과학적 관리·육성이란 측면은 아직 주먹구구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30분 혹은 20분대의 선수는 무조건의 강 훈련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하지만 10분대 혹은 8분대의 선수는 과학적 체력 관리와 훈련 계획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마라토너는 흔히 지구력과 연습량으로 성패가 판가름난다고 한다.
훌륭한 마라토너는 천부적인 체력조건을 살려 자신이 개발한 훈련방식으로 자수성가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도 한다.
물론 강한 지구력으로 전 코스를 줄기차게 달릴 수 있는 체력을 획득 할 수 있으면 그보다 더 좋을 것이 없다.
하지만 마라톤의 지구력 위주시대는 지나갔다. 지구력은 하나의 기초 조건일 뿐 마라톤의 성패는 스피드가 좌우하게 되었다.
페이스를 유지한다고 처음부터 속도를 내지 못하면 20분, 30분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빨리 달리는 연습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연습량은 무조건 많다고 좋은 것도 아니다. 최근의 한 대학 연구소의 연구는 한국선수들의 조로 현상을 보고하고 있다.
한국선수들의 평균연령은 23·3세로 경력이 7년이나 되었으나 이보다 훨씬 빨리 달리는 외국 선수들은 평균 28·1세에 경력이 4년 1개월에 불과했다.
우리 선수들은 골격과 내장 기능이 아직 성숙되지 않은 연령층에서 혹사당하다가 쉽게 주저앉고 있는 것이다. 기초 체력과 스피드를 길러야 할 어린 나이에 무리한 장거리를 강요하기도 한다. 연령 단계별 연습 과정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또 영양과 컨디션 조절이 전혀 비과학적이다. 평소의 영양관리는 물론 경기 전 영양섭취와 경기 시간전의 식사, 경기중 영양·수분공급에 대한 연구·관리가 전혀 없는 상황이다.
마라톤은 선수의 자질도 중요하지만 이 같은 선수관리의 과학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 우리는 지난날 손기정·서윤복 등의 성과만을 자랑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마라톤 중흥의 새로운 결의와 노력이 이루어져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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