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3당대표 연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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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회에서의 정당대표연설이 제도로 정착되고 있음은 반가운 일이다. 국회 회기 초에, 또는 예산안에 관련된 대통령의 내년도 시정연설이 있은 직후 정당대표들이 보통의 국회발언 보다는 훨씬 장중한 형식으로 자당의 견해를 제시하는 것은 국민의 관심도 집중시킬 뿐 아니라 확실히 멋도 있는 일이다.
더욱이 대표연설은 특정한 의제에 관해 제한적인 견해를 밝히는 게 아니라 국정건반에 걸쳐, 사회의 모든 분야에 관해 제한 없이 얘기하는 형식이기 때문에 각 정당의 현실인식이나 문제의식이 뭣인지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대표연설을 듣고 국민들은 그 정당에 대한 지지와 반대의 결심을 하게될 수도 있고 그 정당의 철학이나 경륜 또는 됨됨이 등을 엿볼 수도 있게된다.
그렇다면 5일 국회본회의에서 있은 민정·민한·국민당 등 3당의 현실인식은 어땠을까. 공통점은 무엇이고 상위점은 어디에 있는지를 보는 것은 앞으로의 정계이슈나 정국분위기를 점칠 수 있는 지름길이다.
우선 두 야당의 최대관심사는 한마디로「정치발전문제」로 요약될 수 있는 것 같았다. 정치현실에 대한 두 야당의 인식은 지극히 암?해 민한당은「정치부재」룰 개탄했는가 하면 국민당은「권력의 도덕성」과「정치본령의 회복」을 역설했다.
반면 여당인 민정당의 정치현실에 대한 인식은 사뭇 달랐다. 새로운「정치인상」의 확립과 새로운 정치풍토의 조성이 강조되고 국회에서의 정책경쟁이 제창되었다. 말하자면 정치인들의 자세 논이라 할까, 의원임무의 중대성 같은 것을 여당은 강조한 셈이다.
야당이 정치발전을 위해 내세운 여러 가지 명제들 가운데 여당은 지방자치와 정치해금문제 두 가지만 들어 얘기를 했는데 그것도『지방자치 실시시기를 앞당기기 위한 선행조건들의 현실적 충족을 위해 최선을 기울이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할 일』이라고만 했다.
정치현실에 대한 여야의 인식이 이처럼 큰 괴리가 있는 채로 구성돼있는 것이 우리정계구나 하는 새삼스런 느낌을 금할 수 없게 하는 대목이다. 또 이처럼 다론 생각을 하고있으면서도 용케도 큰 충돌이나 마찰 없이 잘 지내고있구나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국제정세에 대해서는 여당이 비교적 길게 언급하고 야당이 짧게 말한 것은 과거와 비슷했고 인식내용도「냉혹하다」는 데 일치하는 경향이었다.
그러나 여당이 매양 그토록 강조하는 전쟁위험과 국제관계의 냉혹성과 그로 인한 우리 경치의 제약이 언제나 풀릴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답답하기 짝이 없다.
경제문제에 관해서는 각기 당 책에 따라 지론을 폈지만 충격적인 경제조치, 일관성 없는 경제정책을 비판한 것은 3당 공통이었다.
경제의 어려운 점, 그늘진 구석을 야당 측이 조명하고 여당 측이「이만큼의 안정」을 다행으로 여긴 것은 입장의 차이일수 밖에 없지만 경제라는 구체적인 문제에 관한 견해는 여야간에 서로 영향받고 참고하는 자세를 갖는 것이 옳을 터인데 그럴 기미도 문 면으로는 적어 보였다.
결국 말하자면 여당은 여당논리를, 야당은 야당논리를 편 셈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5일의 3당대표연설을 들으면서 우리 정계의 주요세력들이 갖고 있는 공통의 전제라 할까, 딛고있는 공통의 기반이란 것이 얼마나 취약한가 하는 느낌은 지을 수가 없었다. 건국 후 이제 30여년이 지난 만큼 서로 합의·양해·존중하는 공통의 축적도 상당히 있을 법 한데 아직도 원론적 이견에서 헤어나지 못한 대목이 너무나 많음을 절감하는 것이다.
원론적 이견을 해소 못하면 논리의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에 대화를 해도 접점이 없어진다.
이제 11대 국회도 두 번째의 정기국회인 만큼 이슈를 현재화하고·모든 발언·연설이 이슈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합의점과 상이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합의점은 공통의 축적으로 하고 상이점인 집중적인 대화로 풀어나가는 민주경치의 정상적인 궤를 찾아야하겠다. 언제까지 서로 딴 얘기만 하고 지낼 것인가.
안진혁<정치부장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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