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깊이 읽기] '정치인' 달라이 라마의 모습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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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 평전
질 반 그라스도르프 지음, 백선희 옮김, 아침이슬, 504쪽, 1만5000원

티베트의 지도자를 가리키는 달라이 라마는 다면체다. 물질과 탐욕에 빠진 현대문명을 질타하는 '영적 지도자'로서의 얼굴이 있는가 하면, 조국 티베트를 중국에 빼앗기고 인도 북부 다람살라에서 망명정부를 이끄는 '현실적 정치인'으로서의 면모가 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달라이 라마는 주로 종교인으로 부각됐다.

명상.수행.자비.평화.비폭력.깨달음 등의 대명사로 통한다. 각박한 정치 상황에서도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는 그의 넉넉한 마음에 감복한 이가 많다. 하지만 그건 달라이 라마의 한 부분에 불과할 수 있다. 그가 걸어온, 나아가 티베트인이 감내해온 엄혹한 역사에 대해선 미처 눈길을 돌리지 못했다. '정치적 미스터리와 영적 카리스마의 비밀'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달라이 라마를 다룬 숱한 책 가운데서도 티베트의 정치.종교적 현실을 객관적으로, 그리고 방대한 사료를 바탕으로 치밀하게 재현했다는 점에서 남다른 무게를 갖는다.

1933년 13대 달라이 라마의 죽음부터 2003년 14대 달라이 라마의 위상까지 '신비의 종교인'이 아닌 '고난의 정치인'으로서의 달라이 라마를 주목한다. 국가.종교.이념이란 '껍데기'로 한 문화가 다른 문화를 얼마나 철저하게 짓밟고, 무너뜨렸지는를 고발하고 있다. 때문에 20세기 아시아에 대한 양심선언처럼 읽히기도 한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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