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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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21일은 세계평화의 날이다. 9월 세번째 화요일. 유엔은 지난해 11월30일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이 날을 제정, 선포했었다.
바로 그 아이디어를 우리나라의 조영식 박사가 내놓은 것은 좀 의외다. 지난해 6월 남미 코스타리카 수상 상호세에서 세계 대학총장회의를 주재했던 조박사는 기조연설을 통해 그런 제의를 했었다.
코스타리카정부는 이 뜻을 받아 유엔총회에서 발의, 「평화의 날」이 채택되었다. 유엔은 또 오는 1986년을 「세계평화의 해」로 정했다.
「평화의 날」이 정치가들 아닌 교육자들에 의해 제의된 것은 아이로니컬한 일이다. 평화가 정치의 산물이기를 기대하기보다는 교육에 의해 성취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라는 시위 같다.
지난해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연차보고서는 1980년도의 전세계 군사비 지출을 5천억달러로 집계했었다. 그 액수를 더 실감하기 위해 시간으로 환산해보자. 매시간 6천만달러, 매분 약1백만달러씩 지출된 셈이다. 우리 돈으로 매분 7억5천만원 상당.
최근 영국과 아르헨티나는 75일간의 포클랜드전쟁에서 각각 6억달러 이상씩의 전비를 지불했다. 하루 평균 1천8백만달러가 무위하게 사라졌다. 간접비까지 치면 그 액수는 더 엄청날 것이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에도 20억달러의 전비가 들었다. 아직도 이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영광도, 명분도 없는 전쟁의 대가였다. 어느 쪽이든 남은 것은 경제적 파탄뿐. 국민은 이를 위해 피와 눈물을 강요받는다. 총성은 멎었어도 평화는 찾아오지 않은 것이다.
그런 전쟁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레바논에서, 이란-이라크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예멘에서, 사하라사막에서, 나미비아와 엘살바도르에서….
인류는 5전년 역사이래 2만6천회의 전쟁을 치러왔다는 기록도 있었다. 바로 지난 70년대만해도 이 지상에선 40개소에서 무력분쟁이 일어났었다. 2차대전후에 일어난 국지전쟁은 1백50여회나 된다.
이 지구는 잠시도 평화를 구가하는 날이 없다. 구약성기엔 벌써 기원전 7백50년전에 인류가 전쟁없는 평화를 모색했던 기록이 있다. 유대왕「히르키야」와 앗시리아왕「산헤립」은 『칼을 녹여 보습을 만들고 창을 부숴 곡괭이를 만들자』고 약속했다. 그러나 하루도 못가 그것은 로맨틱한 독백이 되고 말았다.
오늘 지구의 어느곳에 설령 평화가 찾아왔다고 해도 그것은 목가적인 평화는 아니다. 총성이 없을 뿐, 배고픔과 병고와 불안, 공포가 잠재해 있는 평화는 평화가 아니다.
평화는 누구의 노력만으로 이룩될 수는 없다. 그러나 멀리 있는 무지개만도 아니다. 모든 나라에서, 모든 분야에서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세계인 모두의 과제이며 책무다. 평화의 날만이라도 그런 생각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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