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본고사" 교육부 압력에 후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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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가 앞으로의 입학 전형에서 지금과 같은 '수리 논술'을 실시하지 않는 방안을 논의함에 따라 논술고사를 둘러싼 본고사 논란이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고려대의 수리 논술은 그동안 대학 측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대표적인 '본고사형 시험'으로 지목돼 왔다. 논술고사의 비중이 강화되는 2008학년도 새 대입제도가 발표된 이후 논술이 본고사로 변질돼 실시될 것이란 주장의 근거로도 고려대의 수리 논술이 제시됐다.


그러나 고려대가 수리 논술을 폐지할 경우 이 같은 '논술=본고사' 논란은 수그러들 전망이다. 이는 또 본고사형 논란을 일으킨 다른 대학의 논술고사 출제에도 영향을 줘 '수위 조절'을 유도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통합교과형 논술 파문을 일으킨 서울대 등의 2008학년도 전형 방법에도 영향을 미쳐 각 대학들의 통합교과형 논술 출제가 이달 말 교육인적자원부가 제시할 '논술고사 가이드라인'의 범위를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 고려대 입장 바꾸나=고려대는 그동안 수리 논술이 본고사라는 전교조.학부모단체의 지적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여왔다. 그러나 8일 치러진 수시 1학기 모집 논술 전형을 앞두고 지난달 실시한 수리 논술 모의고사도 사실상 본고사라는 비판을 면치 못해 부담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 학원가에서는 "표와 그림 등을 다양하게 제시했지만 수식을 감추고 포장만 다르게 했을 뿐 과거의 본고사 수학 문제와 다를 게 없다"는 지적이 대세였다. 고려대는 본고사 논란을 피하기 위해 이번 수시 1학기 수리 논술고사에선 '풀이형 문제'를 최소화하고 논리력만으로 풀 수 있는 '논술형 문제'를 출제하겠다고 밝혔었다.

이달 말 논술출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논술 고사를 둘러싼 본고사 논란을 차단하려는 교육부의 입김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 박융수 학사지원과장은 "다른 대학은 물론 고려대 내에서도 수리 논술이 본고사에 가깝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며 "이달 30일 발표할 논술 출제 가이드라인에 현행 고려대의 수리논술은 바람직하지 않은 유형에 포함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고려대가 교육부의 방침을 계속 거스르면서 수리 논술을 고집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많다.

고려대 관계자는 "수리 논술에 대한 논의 과정에서 총장.입학처장과 교육부 관계자가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인묵 고려대 입학처장은 "입장이라는 게 변하는 것이며, 비바람이 부는 데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 전망=고려대의 입장 선회는 다른 대학의 입학 전형 방법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고려대의 방침에는 교육부의 논술출제 가이드라인을 따르겠다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화여대의 수리 논술이 대표적이다. 이화여대는 지난달 23일 실시한 수시 1학기 수리 논술 문제로 '영희가 집의 해발 고도를 알고 있을 때 영희의 집에서 남산타워의 정상을 잇는 직선과 수평선이 이루는 각도를 이용하여 남산타워의 높이를 계산하는 방법을 설명하라'는 내용을 출제해 본고사 논란을 일으켰다. 대학 측은 답이 아니라 문제의 풀이과정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본고사 논란을 비켜나갔다. 하지만 앞으로 교육부의 논술출제 가이드라인이 어떻게 확정되느냐에 따라 논술 출제 유형에 변화가 불가피할 수도 있다.

통합교과형 논술 파문을 일으킨 2008학년도 이후 입시에서의 '논술=본고사' 논란도 한풀 꺾일 전망이다. 서울대가 논술은 실시하되 교육부의 가이드라인을 지키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데다 고려대가 가이드라인 준수 방침을 분명히 하게 되면 다른 대학들도 본고사 수준의 논술 고사 출제를 자제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남중.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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