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희곡사』 펴낸 류민형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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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우리나라 현대희곡이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정리되었다. 단국대 류민형교수(한국연극사전공)는 11년간의자료수집과 집필의 결산으로 『한국현대희곡사』를 대놓았다.,
「우리문학사는 시와 소설에 대해서는 그런대로 정리가 되었으나 희곡부문은 전혀 손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문학의 3대 장르가 시·소설·희곡이라고 한다면 그셋중의 한부문에 대한 연구가 불모의 상태에 있었다고할수 있지요.』
유씨는 자신의 노력이 우리 문학사를 총체적으로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기 바란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우리문단에서는 희곡에대한 연구가 거의없었다. 희곡을 분석하여 평하는 작업이 부족했고 희곡집도 드물었다..
희곡은 문학작픔으로 보이기 보다는 연극의 대본으로 생각되었으며 공연이 끝나면 곧 사라져버리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희곡집도 드물어 일제시대를 통틀어 5권밖에 희곡집이 없고 그후로도 희곡집이 많이 나오지 못했다.
희곡이 남아있지 못한 것은 자연히 희곡에 대한 시대적·체계적인 연수를 어렵게했다.
『신파극이 시작된후 국내에서 나온 희곡은 2천편정도 됩니다만 그중에 남아있는 것은 절반정도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잡지의 한귀퉁이에 있거나 개인소장으로 묻혀있는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연구하기가 어렵습니다.』
유씨는 도서관·수장자등을 찾아다니며 작품을 찾아내는 자료정리가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다. 유씨는 우리의 연극에 대한 연구가, 연극운동사 내지 극단공연사에 머무른것도 자료정리의 부족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국현대희곡사』에서 유씨는 우리희곡의 정신적 맥 ▲전통적인 모럴이 붕괴되면서 새로운 모럴을 추구하는 노력과 갈등 ▲외세의 압박과 억눌리에 대해 생존권을 확보하기 의한 몸부림이었다면서 우리희곡은 대체로 항거의 자세를 지녀왔다고 보았다.
연극적인 맥으로는 일본신파극의 영향을 받은 신파극과 서양근대극의 두분야로 가를 수 있으며 신파는 5O년초까지 존속하면서 대중의식을 일깨우는 기능보다는 대중을 울리고 퇴폐적인 성향을 띠었고 근대극운 대중을 일깨우는 메시지는 강했으나 예술성이 약했다고 보았다.
임선규 이서구 김춘광 김고당 박승흄 김영회 이광내씨등에 의해 주도되어오던 우리연극은 60년대들어와 오봉석 윤대성씨둥 신인희곡작가를 낳음으로써 부조리극·서사극으로 나아갔고 사회각분야에대한 비판과 풍자를 띠게되었으며 70년대에는 우리의 토속 민속 무속 민화에서 소재를 따와 『초분』 『태』 『망나니』 등의 작품을 낳았고 한국인의 존재양식이 무엇이냐는데 관심이 주어지고 있다고 유씨는 분석했다.
유씨는 앞으로 예술사로서의 한국연극사가 나와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씨의 이번 1911년부더 1969년까지의 회곡에 대한 연구는 우리희곡사의 골격을 세운것과 함께 회곡작품의 정리(부록으로 나온 작품연보)가 이루어져 뒤이을연구에 편의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될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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