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국사 바로잡는 계기로 삼자|정재각 정신문화원 원장이 말하는 「일본교과서왜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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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역사를「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표현한「E·H·카」의 말에 동감합니다. 역사의 해석자는 현재를 호흡하며 보고 듣고 느끼는 상황을 기준으로 해서 과거를 판단하는 도리밖에 없지요. 그런 의미에서「모든 역사는 현대사」라고 지적한「크로체」의 말은 좀 과장된 표현이긴 하지만 맞는 얘기입니다. 그렇다고 과거를 현재의 요구에만 맞게 제멋대로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과거의 사료를 기준으로 봐야지 이를 초윌해선 안되지요. 사료의 제한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그리니 역사는「과거와 현재의 악수」이지요』
이따금 띠는 잔잔한 미소 사이로 냉정한 학자풍의 면모를 느끼게 하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이며 동양사학자인 정재각박사. 먼저 오늘날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데 대해 말문을 열었다.
『한국의 사회, 한국인의 의식구조, 사회상황 또한 과거의 그림자가 담겨 있읍니다. 과거가 쌓이고 쌓여 현재를 이루고 있지요. 그런 점에서 서양의 아무리 훌륭한 것이라도리 우리에게 역사적 토양이 부족하면 갑자기 수용될 수는 없다고 봐요.』
그렇다면 과거의 지배만을 받고 활동도 의욕도 없이「숙명」이라 단념하며 자포자기에 맡길수 밖에 없을까.『인간은 과거의 구속과 지배를 받는 한편 앞을 내다보며 미래지향적인 활동을 하려는 의지를 지니고 있읍니다. 이점에서 과거의 구속만이 아닌「자유의 여지」가 있지요. 과거와 미래가 만난 지점은 바로「나」가 되는 것이지요.』
정박사는 따라서 이렇듯「살아있는 역사」를 어떻게 의식하느냐 하는 문제는 그것이 바로 역사추진의 원동력이란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강조했다. 민족과 나의 과거에 대한 역사상이나 이미지에 따라 역사발전의 기폭제도 되고 타락의 모멘트도 될 수 있다는 것.
중요성을 우열을나 전쟁사에 치중해서 가리려는 단순한 사관은 올바른 역사 평가방식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토인비」의 사관은 매우 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그는 모든 문명을 같은 레벨에 놓고 그것이 내부·외부의 조건에 대해 어떻게 응전하여 얼마나 지속했는지에 따라 그 문명의 생명력과 의미를 평가 했지요.
정박사는「도전」이니「응전」이니 하는 말은 싸움터의 용어 같으니, 어떻게「대처」했느냐는 정도의 의미로 썼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대처하는데도 우리 자신을 잃지 않는 범위 내에서 취사 선택하여 받아들이는 문제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한민족은 매우 우수한「대처」민족이지요. 예를들면 한글의 발명을 얘기할 수 있읍니다.
당시 압도적인 한문화의 연합 아래서 전혀 체제와 형태가 다른 한글을 생활의 실용성 때문에 만들어 냈지요. 무조건 아무런 유보 없이 한 문화를 받아 들이건 아니란 말입니다. 이점이 바로 역사상 우리 주변의 많은 강대민족이 부침을 거듭하고 사라지는 동안에도 면면히 민족의 맥을 이어온 저력의 핵심임니다.』
정박사는 우리 민족의 이러한 문명적 수용력과 창조력을 평가하지 않고 정치·파쟁등의 취약점만을 과도하게 강조, 열등 민족화합 점을 지적하고 일제의 식민사관은 그 심화의 결정적 계기를 가져 봤다고 실명한다.『일본은 우리의 이웃이지요. 고대에는 우리 문화의 압도적 영향을 받았어요. 아마 그 통치계급이 한국인일지 모른다는 얘기는 현재 고고학적 성과나 기록으로 봐서 전혀 근거없는 추측만은 아닐 겁니다. 나라(나라)시대의 그들 복장을 보면 우리한복과 아주 흡사 했어요. 우리는 문명의 영합을 주는 한편 문명의 소유자로서 건너가 다스렸넌 것이지요.「가마꾸라」(겸창)대부가 열리면서 무인정치를 시작하고 부터 그들은 외부와의 교류빈도가 뜸해졌고 문화의 변화도 이때부터 시작됐지요.
풍신수길의 대륙침략이 실패한 후 그러한 경향은 더욱 강화 됐지요. 덕천대부의 3백년은 더욱 엄중한 쇄국정책을 썼지요. 그동안의 교류란 이른바 약간의 수신사형식의 내왕을 제의하고는 한국·중국연안에 출몰해 노략질 한 것이 고작이 었어요. 그동안 섬나라의 봉쇄적 문화로 변질되면서 국수적이랄까, 일본적 냄새가 짙게 품기는 결과를 가져 왔지요. 대륙적 개방문화는 이렇게 쇄국적 섬나라문화로 변화 하면서 축소화한 것 이지요.』
원래 초민족적·인류적 차원의 숭고한 철학이나 지도원리는 일본엔 없다고 정박사는 지적한다. 이를테면 유교철학 같이 민족을 초윌하고 인류적 질서화에 통할 수 있는 철학체제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 그러면서도 그들이 대동아 공영권을 내세우며 전쟁을 일으킬 때 「세계가 한 짐안」이라는「팔현일자」를 내걸고 독주하려 한 것은 그들 자신속이 역량도 없었을 뿐더러 철학체졔의 뒷받침도 없는 허구요, 분에 넘친 과욕이 었다고 그는 설명한다.
『일본은 서양문화를 받아 들이는 과정에서도 합리주의나 인권사상, 민주주의 같은 것은 안받아 들이고 물질적 문화, 제국주의적 사후방식 같은 것 만 집중적으로 받아 들였어요. 지금도 그들 위정자 가운데「힘이 정의」라는 제국주의 시대의 사고방식을 보존시키고 있는 자가 상당수 있다고 봐요.「이기면 관군이요, 지면 적군」이라는 그들의 속담은 바로 이런 사고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물론 일본엔 일부 평화세력이나 순수 아카데미즘의 학자들이 있고 근면·단결·왕성한 연구성등 우리가 배워야 할 그들의 민족성도 높이, 평가해야 되겠지만 그것들이 인간의 존엄성이나 숭고한 인류애등의 정신적 토양에 뿌리박고 있지 못하다면 언제 또다시 관동대지진 때의 한국인 학살이나 남경의 중국인 대학살 사건 같은 잔인한 모습으로 변질될는지 모른다고 지적한 정박사는 또 그들 평화운동 세력들이 편협한 군국주의 부활운동자 들에게 얼마나 대합 할 수 있을는지 우려한다.
『우리는 표본이란 불편한 이웃만을 갖고 있는 건 아님니다. 우리주변의모든 나라가 자기민족에 유리하게 역사를 꾸미려는 경향이 강해요. 우리는 그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입니다. 이번 일본교과서 왜곡사건은 이러한 상황을 일깨워주는 중요한 계기가 됐어요. 기회는 항상 오는게 아니지요.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우리 국사를 바로 찾는 작업에 매진할 때입니다. 종래 이런 작업에 아주 소흘했던 것은 아니나, 이번에 특히 국사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뼈저리게 느끼면서 나 자신 책임을 통감합니다.』
정박사는 이번 사태로 주변국에 의한 우리국사의 위기를 절감 한다면서 앞으로 묻혀있는 국사, 비틀려있는 국사를 구체적으로 캐내어 바르게 인식하는 연구운동를 벌여야 겠다고 말한다.
『외국인의 눈을 통해 본 편견이 우리 국사서술중에 아직도 있지나 않은지, 처음부터 꼴까지 우리 눈으로 직접 확인·서술·교육해야 하는, 우리 국사의 일대 점검이 필요합니다.』 정박사는 현행 역사교육에서도 과연 우리의 올바른 민족문화 인식에 필요한 영양소를 제대로 공급하고 있는지 검토해 볼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근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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