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걸어놓은 매(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l978년 섣달 그믐날은 일요일 이었다. 이때문에 영국내무성은 한가지 고민거리가 생겼다. 왜냐하면 1780년에 제정되어 지금도 유효한 법에 따르면 일요일에는 공공장소에서 춤을 츨수 없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영국인들이 전통적으로 가정을 떠나 식당이나 주점에서 밤새도록 춤을 추는 섣달그음이 일요일과 일치하게 되었으니 법을 법대로 시행할 경우 대부분의 국민들은 범법자로 처리해야 될 판이었다.
생각끝에 내무성은 묘한 편법을 썼다. 한편으로는『일요일에 춤을 금지하는 법을 보류하거나 예외규정을 만들 권한이 내무성에는 없다』는 성명서를 발표함으로써 법의 존재를 재확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찰이 이날만은 공공장소에서 춤주는 행위를 문제 삼지 않도록 방임했다.
관습법과 판례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영국법은 기사도가 횡행하던 중세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법과오늘의 법이 공존하는 대서 오는 혼란이 있긴 하지만 그런 혼란 때문에 법을 보다 융통성 있게 운용하게 만드는 강점도 생기게 된 것 같다.
그래서「악법도 법이다」와 같은 추상같은 변구 대신에 영국인들이 법에 관해 자주 인용하는 속담은「마그나·카르타」에 명시 되어있는『지연되는 정의는 정의의 거부나 마찬가지다』라든가『법은 겉으로 보기에도 공정해야 된다』와 같은 지극히 세속적인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공정」해야 된다는 말은 일반서민이『뭐 그따위 법이 있어?』란는 의문을 품지 않는 수준의 법 시행을 뜻하는 것이다.
이런 상식적인 법의 요건에 미달하기 때문에 공공연하게 위법행위가 자행되는 예를 일요일에 관련된 각종 규제법에서 볼 수 있다.
1780년에 제정된 현행법에 따르면 일요일에는 서커스와 쇼와 모든 형태의 스포츠가 금지되어 있다. 아직도 대부분의 극장은 이 법을 지켜 일요일엔 문을 닫지만 다른 흥행은 모두 열심히 하고 있다.
1950년에 제정된 상징법은 일요일에 팔수 있는 물건은『상하기쉬운 물건』에 국한해 놓았다. 그래서 이 법대로라면 신선한 야채와 과일은 살수 있어도 통조림은 살수 없게 된다. 또 신문과 잡지는 살수 있어도 성경은 사지 못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모든걸 살수 있다. 경찰은 시민이나 일요일에 문을 닫은 이웃 상점에서 이의를 재기하지 않는 한 이 법을 없는 것 으로 취급해 버린다.
이 일요일 법이 처음 제정 되었을 때는 이 법을 빠져나가기 위한 묘수가 상당히 나왔었다. 예컨대 가구점이 일요일에 문을 열면 시금치를 팔았다. 그런데 시금치 값을 가구값과 같이 수십만원씩 불렀다. 그걸 사는 손님에게는 가구를 덤으로 얹어줬다. 조삼모사의 묘미를영국의 가구상들도 터득한 셈이다.
또 일요일에 시장을 열 수 있는사람은 유대인으로 국한되어 있는데 이 규제를 피하기 위해 영국인들이 무더기로 유대교로 개종 해서 말썽을 빚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 두경우는 모두 너무 지나치다고해서 금지되었다.
요즘은 유대인이 아니라도 일요일에 상점을 열고 시장에 점포를펴는 사람수가 불어 나고있고 일요일 상점법을 폐기하자는 여론이 높다. 하지만 기독교 로비의 반대가 대단해서 이 법이 폐기될 가능성이 당장은 없다.
이런 예들을 보고 영국에는 법질서가 문란하다고 속단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영국 경찰이 윈래부터 과잉 단속을 안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이다.
경찰의 과잉단속하는 버릇을 고친 유명한 관례가 1951년에 있었다.
영국의회는 2차대전이 시작된지 이틀만에 모든 시민은 신분증을 소지해야 하며 경찰관의 요구가 있을때는 이를 제시해야 된다는 법을 통과 시켰다. 그런데 전쟁이 끝난지 5년이 지났는데도 이 법이 그대로 시행되고 있었다.
어느날 경찰관이 지나가던 자동차를 세우고 신분증 제시룰 요구했다. 운건사는 이를 거부했다. 그래서 이 운전사는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1심과 항소심에서 모두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판결문에서 재판관은 다음과 같이 경찰을 나무랐다.
『경찰은 권력을 갖고 있지만 그걸 항상 사용해서는 안된다. 사소한 일에 권력을 휘두르는 것은 상식에서 벗어난다. 그러므로 유죄판결이 내려 졌시만 재판 비용은 피고에게 부담시키지 않는다.』
권력을 갖되 이를 행사하지 않는 것을「유보적 권력」(reserve power)이라고 하는데 이런 예를 영국정부가 BBC방송에 대해 갖고있는 규제권 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채신부는 BBC의 전파 사용면허를 언제나 춰소 할수 있고 모든 정부부처는 자기부처에 관련된 기사를 언제나 사전 검열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정당이 집권하든, 이권한을 한번도 행사한 적 이 없다.
심지어 56년의 수에즈 전쟁이나 최근의 포클랜드 전쟁증 정부와 BBC가 격렬하게 충돌했을때도 이유보적 권력은 어떤 형태로도 휘두르지 않았다.
비유의 부경스러움을 무릅쓴다면 정부가 갖는「유보적 권력」은 자식을 때리지 않기 위해 부모가 전시용으로 걸어놓는 매(매)같은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