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진 수요일] 청춘리포트 - 신인 아이돌 24시간 동행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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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뮤직뱅크’ 생방송이 끝난 뒤 임시 대기실에 모인 아이돌 그룹 ‘핫샷’과 스태프. 아이돌(idol)은 대중의 우상을 뜻하지만 한국 음악계에선 10~20대 가수를 통칭하는 뜻으로 흔히 쓰인다.

가도 가도 아는 길을, 그러니까 세상이 정해놓은 성공 코스를 따라가는 삶의 막막함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청춘은 일부러 정해진 길을 이탈합니다. 이를테면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하지 말라는 음악에 제 삶을 건 청춘들. 요즘 가수의 꿈을 꾸는 청춘이 많습니다.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에 매년 200만 명에 가까운 청춘들이 몰립니다. 해마다 대학 실용음악과는 경쟁률이 수백대 1에 달합니다. 우리 시대 청춘들은 어떤 이유로 가수가 되기를 꿈꿀까요. 청춘리포트는 갓 데뷔 3주 차인 아이돌 그룹 ‘핫샷’의 하루를 취재했습니다. 대중음악의 영토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길을 개척하고 있는 청춘의 이야기입니다.

정강현 청춘리포트팀장

지난 14일 새벽 서울에 첫눈이 내렸다. 6인조 아이돌 그룹 ‘핫샷’의 숙소를 찾아가는 길이 제법 미끌거렸다. 핫샷은 이제 데뷔 3주 차인 신인 그룹. 요즘 그들의 하루하루가 꼭 눈길을 걷는 것처럼 긴장되지 않을까.

 #잠실 숙소: 숙소는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있는 방 세 개짜리 빌라였다. 새벽 4시. 6명 멤버는 잠이 덜 깬 상태였다. 준혁(22)·티모테오(21)·호정(20)·윤산(20)·키드몬스터(21·본명 노태현)·성운(20). 이들의 얼굴에선 힙합 그룹다운 반항기도 얼핏 읽혔다.

 “눈이 많이 왔나요? 리허설에 늦으면 안 되는데….”

 준혁이 곶감을 먹으며 말했다. 목에 좋다며 아버지가 보내준 곶감이라고 했다. 대충 옷을 걸친 멤버들이 곶감을 입에 물고 차가운 새벽 거리로 나섰다.

 #압구정 뷰티숍: 첫 스케줄은 메이크업이다. 6명 전원이 메이크업을 받는 데 두 시간이 걸린다. 잠이 덜 깬 멤버들이 눈을 감은 채 스타일리스트에게 몸을 맡겼다. 중간중간 삼각김밥을 구겨넣으며 아침을 해결했다.

 “눈 좀 떠라, 얘들아. 다음주 스케줄이 들어왔다.”

 매니저 박길상(30)씨가 속삭이자 멤버들이 눈을 번쩍 떴다.

 “정말요? 그럼 우리 한 바퀴 도는 건가?”

 한 주에 편성되는 지상파 3사·케이블 생방송 가요 프로그램에 전부 출연하는 것을 두고 업계에선 ‘한 바퀴 돌았다’고 표현한다. 매주 멤버들은 ‘헛바퀴’를 돌까 걱정이다.

 -스케줄에 신경이 많이 쓰이죠?

 “우리 멤버는 모두 20대잖아요. 대다수 아이돌이 10대 후반에 데뷔하니까 늦은 편이죠. 스케줄 하나하나에 피가 말라요.”(윤산)

 가수를 꿈꾸는 청춘에게 데뷔란 진학이나 취업보다도 잔혹한 경쟁이다. 오죽하면 ‘아이돌 고시’라는 말까지 생겼을까. SM·YG·JYP 등 대형 기획사의 연습생 오디션만 해도 평균 경쟁률이 1000대 1을 넘는다. 연습생이 되면 보컬·안무·외국어 공부 등 빡빡한 일정을 견뎌내야 한다. 이 혹독한 과정을 통과한 뒤에야 최종 데뷔가 결정된다.

 티모테오도 이런 과정을 거쳤다. 9년 전인 초등학교 6학년 때 SM 연습생으로 들어가 엑소(EXO)의 멤버가 될 뻔했지만 최종 탈락했다. 포기할까 싶었지만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다시 연습실 거울 앞에 섰다. 그리고 3년 전 ‘핫샷’ 멤버로 선발됐다. 티모테오 등 핫샷 멤버들은 3년간의 연습생 생활 끝에 지난달 말 데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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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뮤직뱅크 스튜디오: 오전 8시. KBS ‘뮤직뱅크’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대기실이 생각보다 초라했다. 별도 방이 아니라 칸막이만 쳐진 곳이었다.

 -방송에서 보던 대기실과는 다르네요?

 “출연자 대기실은 A급 가수들만 쓸 수 있어요. 우리도 언젠가는 가야죠.”(호정)

 이 좁은 공간에서 오전·오후 리허설을 준비하고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을 다듬었다. 오랜 대기 시간에 지쳐 돗자리를 깔고 ‘쪽잠’을 자는 멤버도 있었다.

 오후 6시40분. 핫샷은 네 번째로 방송 무대에 올랐다. 데뷔 초기라 팬이 많지는 않았다. 20여 명의 소녀 팬이 플래카드를 흔들었다.

 스스로 빛나는 별은 없다. 별은 주변의 빛을 반사해 세상을 비춘다. 아이돌 가수도 마찬가지다. 화려한 무대 뒤에는 또 다른 청춘들의 노력이 숨어 있다. 핫샷의 매니저 박길상씨는 사회복지사 일을 하다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 스타일리스트 박주현(22·여)씨는 방송이 있을 때마다 6~7시간씩 서서 일한다. 코디네이터 안수빈(23·여)씨도 핫샷 멤버들을 도우면서 패션 디자이너 꿈을 키우고 있다.

 #다시, 숙소: 방송이 끝나고 팬미팅까지 마치자 밤 10시30분이 됐다. 숙소로 돌아와 치킨과 피자를 나눠먹으며 이야기를 이었다.

 -20대 청춘들이 왜 가수를 꿈꿀까요.

 “저는 사실 고2 때까지 전교 10등 안에 들 정도로 공부를 잘했어요. 그게 우리 사회가 정답이라고 제안하는 길이니까요. 하지만 다른 사람이 정해준 길만 간다면 제 인생은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잘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고3 때 무작정 울산에서 서울로 올라왔는데 결국 기회가 주어졌어요. 이제 겨우 시작하는 단계이지만 좋은 뮤지션으로 꼭 성공하고 싶어요. 꿈을 꾸고 성취하는 건 청춘의 특권이잖아요.”(준혁)

 멤버들은 2층 침대 세 개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선 이들의 데뷔곡 ‘테이크 어 샷(Take a shot)’이 흘러나왔다. 거울을 보며 춤 연습을 하는 멤버도 있었다. 숙소와 연습실의 경계가 따로 없는 곳에서 청춘의 꿈이 영글고 있었다.

글·사진=장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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