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급수 사는 가재 남산에 돌아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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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남산 계곡에서 발견된 가재. 강정현 기자

▶ 남산제비꽃은 4∼5월에 꽃이 핀다. 사진은 지난 4월 길동생태 공원에 핀 남산제비꽃. [서울시 제공]

서울 남산에 가재가 살고 있다. 발견된 것만 20여 마리다. 가재는 깨끗한 1급수에서만 산다. 서울시는 5월부터 실시한 남산공원 생태 모니터링 1차조사 결과 타워호텔 남쪽 계곡에서 가재를 발견했다고 26일 밝혔다.

이와 함께 남산제비꽃 군락지 세 곳도 발견됐다. 첫 발견지가 남산이라서 붙여진 꽃이름이다. 전국 야산에 흔하지만 남산에서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풀이다. 지난해 3월 남서쪽 계곡에서 개구리알과 도롱뇽알을 발견한 데 이은 반가운 소식이다. 도롱뇽 역시 1급수에서만 사는 생물이어서 당시 화제가 됐었다.

개구리알이나 가재가 나타나는 것이 화제가 될 만큼 남산은 그동안 생물이 살기에 척박했다. 생태조사를 진행 중인 서울시립대 한봉호 교수는 "주변에 건물과 도로가 들어서 녹지축이 단절되고 수맥이 끊겨 물이 부족해진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토양환경을 변화시켰고 남산제비꽃 같은 자생종은 살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 "자생종이 물러난 자리는 가죽나무.서양등골나물 같은 억척스러운 외래종이 채웠다"는 것이 한 교수의 설명이다. 개구리 등 양서류도 건조한 환경에서는 살 수 없다.

이런 남산에 다시 습기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 자연생태과 온수진씨는 "지난해 개구리알과 함께 이끼 군락지도 발견됐다. 이끼가 자랄 만큼 수분이 충분하고 대기오염도 어느 정도 개선됐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생태계는 먹이사슬로 이어져 있다. 개구리가 발견됐다면 그걸로 끝이 아니다. 개구리를 잡아먹는 뱀, 뱀을 잡아먹는 매도 살 수 있는 환경이 됐다는 얘기다.

이 같은 생태계 복원을 서울시는 1991년 시작한 '남산 제모습 찾기' 사업의 성공에서 찾는다. 이때부터 꾸준히 소나무를 심었다. 덕분에 현재 남산에는 약 3만1000여 그루의 소나무가 다섯 군데에서 군락을 이루고 있다. 2000년에는 반딧불이를 번식시키려고 습지를 조성했다. 반딧불이 이식은 실패했지만 그 자리에 개구리가 살 수 있게 됐다.

5월 말에는 계곡물을 끌어들여 생태연못 12곳을 만들었다. 연못에는 개구리 등을 방사했다. 앞으로 서울숲까지 연결되는 한남동 생태통로도 마련할 계획이다. 개구리와 도롱뇽알이 발견된 천일약수터는 잠정 폐쇄하고 서식공간을 조성키로 했다.

남산공원관리사업소 측은 현재 이들 생물의 보존에 부심하고 있다. 지난해 호기심에, 몸보신에 쓰겠다며 개구리알을 퍼가는 시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사업소에서는 공익근무요원을 배치해 알을 지키기까지 했다. 사업소 김을진 소장은 "남산의 생물을 지키려는 시민정신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권근영 기자<young@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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