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불거진 안기부 불법도청] 검찰 "불법자료 … 무슨 근거로 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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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불법 도청 테이프에 대해 검찰의 수사가 가능할까. 검찰의 고위 인사는 22일 "명백한 불법 행위인 도청을 통해 얻어진 자료(녹음테이프)를 갖고 무슨 근거로 수사를 하느냐"며 "공소시효도 지나 수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우선 안기부 직원의 불법 도청 행위(1997년)는 공소시효가 지났다. 공소시효는 범죄행위가 발생한 시점부터 검사가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때까지의 기간. 이 시간이 지나면 범죄행위에 대해 처벌할 수 없다. 검찰이 수사해야 할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안기부의 불법 도청행위는 통신비밀보호법상 공소시효가 7년이다. 2004년에 공소시효가 완료됐다. 현재로서는 국정원의 자체 진상조사와 별개로 죄를 물을 수 없다.

대화 내용에 담겨 있다는 정치인의 정치자금 수수 등에 대한 조사도 공소시효가 지나 어렵다. 지난해 개정되기 전의 정치자금법상 공소시효는 3년이기 때문이다.

다만 국회의원이나 공무원이 5000만원 이상을 대가성이 인정되는 뇌물로 받은 사실이 확인되면 공소시효가 10년인 특가법상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대가성을 갖고 돈을 건넸다는 증언이나 증거도 없는데 무작정 수사하는 것은 무리"라며 "시민단체 등의 고발이 있더라도 신빙성이 담보되지 않는 불법 자료를 갖고 수사할 수는 없다"고 못박았다.

법조계에서는 위법한 자료를 갖고 수사에 착수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불법 도청된 내용으로 수사가 진행된다면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공론화된다는 측면에서 대화 당사자가 피해자가 되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녹음테이프가 언론사에 넘어가고, 그 내용이 방송될 경우 수사 가능성은 열려 있다. 검찰 관계자는 "언론 보도에서 구체적 이름을 거명하면 명백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에 해당한다"며 "해당 언론사에 대한 처벌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은 '지득한 통신 또는 대화의 내용을 공개하거나 누설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제16조 2항)고 명시하고 있다.

녹음테이프를 건네준 전 안기부 직원이나 언론사가 도청된 테이프를 공개하는 행위도 이에 포함된다. 서울남부지법은 21일 홍석현 주미대사와 이학수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이 MBC를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에서 ▶녹음된 원음▶대화 내용▶당사자 실명 등을 거론하거나 직접 인용하는 행위를 금지시켰다. 피해 당사자들이 명예훼손 혐의로 해당 언론사를 고소.고발할 경우 처벌받을 공산이 커진 것이다.

문병주.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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