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갑맞는 해방 제1세대 학자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학계의「대가」들이 올해부터 대거 환갑을 맞고 있다.
해방 직후 대학을 나온 이들은 바로 오늘의 우리 학문이 있게끔 토대를 쌈은 주역들-.
해방과 더불어 그동안 억눌려왔던 민족의 교육에 대한 열의가 크게 상승, 한국사회에 대학붐을 일으켰다.
1945∼50년사이 주로 서울대를 중심으로 배출된 이들은 해방전에 비해 급격한 수적 증가추세를 보였다.
오늘날까지 학계를 행성해온 이들「해방 제1세대」가 환갑 러시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올해 환갑을 맞는 교수로는 김원룡(서울대·고고학) 조성식(고려대·영문학) 여석기(고려대·영문학) 김룡덕(중앙대·한국사) 손보기(연세대·한국사) 정병욱(서울대·국문학) 곽고녹(서강대·독문학) 김종호 (성균관대·철학) 윤명노 (서울대·철학) 김동욱 (연세대·국문학) 석찬호(서울대· 영문학) 김종서(서울대·교육학) 최학근(서울대·국문학) 김붕구 (서울대· 불문학) 남도영 (동국대·한국사) 송민호(고려대·국문학) 유동직(연세대·신학) 이기영 (동국대·불교학) 이영무 (건국대·한국사) 정한숙(고려대·국문학) 최신덕(이화여대· 사회학) 석포영(중앙대·국문학)교수등.
내년엔 김철준(서울대·한국사) 정범모(전 충북대총장·교육학)이응백(서울대·국문학) 김석하 (단국대·국문학) 정한모 (서울대·국문학) 유승국 (성균관대·철학) 양병척 (서울대· 서양사) 추총수(연세대·국제정치) 교수등, 내후년엔 차기벽(성균관대·정치학) 이명구(성균관대·국문학) 고병익(전 서울대층장· 동양사) 이기백(서강대·한국사)윤무병(충남대·고고학) 이광린 (서강대·한국사) 이두현(서울대·국문학) 이혁재(전 이화여대·사회학)교수등이 환갑을 맞는다.
김동욱교수는 이들의 시대가 학문적 개척시대 였음을 강조한다. 김교수는 해방 제1세대는 『주를 달 수없는 세대』였다고 말하고 문헌 실증학적 연구엔 진척이 있었으나 방법론의 확립엔 문제가 었었다고 지적한다.
한 교수는 이 세대가 자기분야의 학문 연구적 공로보다 학문의 중추를 육성하는 활동적 측면에서 업적이 두드러진다고 평가했다. 그만큼 제자들은 그들이 지어준「집안」에서 학문적연구에 몰두, 괄목할 연구성과를 거둔다는것.
환갑 러시에 따라 학계도 한층 바쁠 전망이다.
왜냐하면 이들 중 상당수에게「환갑기념논총」이「봉론되고 있기 매문.
회갑기념논총은 스승의 회갑을 맞은 제자들이 뜻을모아 스승의 근영·논저목록·연보와 합께 스승의 동료·후배·제자들과 논문을 모아 기념집으로 펴내는 것이 보통이다. 대략 2년 정도의 준비기간을 갖는데 이것이 긴 편은 아니다.
단행본으로 펴내는 경우가 보통이나 기왕에 나오는 정기 논문집을 회갑기념 특집호로 꾸미는 예도 있다.
올해 조성직·여석기 교수의 경우 같은 고대 영문과 교수로서 한 책에 나란히 회갑기념논총을 꾸미고 있으며, 김동욱교수에겐 후배·제자교수들이 김교수의 학문세계를 비판하는 논문만을 모아 기념논층을 만들어 바쳐 이채를 떠고 있다고-.
이렇듯 사제간의 도리를 바탕으로 출발한 회갑기념 논총도 러시를 이루면서부터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이전에는 학자수도 적고 환갑 정도 맞으면 평생의 사업을 마무리지을 시기여서 그런대로 의미있는 일이었으나 오늘날의 환갑은 아주 정력적으로 연구활동을 계속할 나이인 데다수적 으로 너무 흔해서 그 의미가 많이 퇴색하는 느낌이다.
따라서 7년전 한고근 교수가 회갑기념 논총을 고사한후 정년기념논총이 간행된 이래 이러한 선례를 따르는 학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또 교수는 학자요 재자가 있으니 사회통념상 기념논총 하나쯤 있어야 한다는 학문 의적 요인이 작용하는 경우도 어쩌다 나타나게 됐다.
S대 L교수의 경우, 논문집도 만들지 않고 그럴듯한 연회장에 수많은 유명인사까지 초청한 후 회갑기념 논총 봉점식이란「해프닝」이 벌어진 일도 있었다고 한 교수는 귀뜸한다.
제자의 입장에서 보면, 스승의 홀륭한 회갑기념논총 이야말로 제자의 도리를 다하는 징표처럼 느껴지며 이러한 형식논리는 다시금 자기 스승이 남보다 못 할것 없다면서 기념논총을 놓고 스승을 둘러싼 제자들간의 신경전으로까지 치닫는 경향이 가끔 눈에 띈다고.
1년에 제대로 된 논문한편 쓰기도 힘든데, 앞으로 양산되는 회갑·정년등 기념논총에 겹치기로 논문을 써야할 경우도 생길지 모르겠다고 S대의 한소장 교수는 지적하기도 했다. <이근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