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 조건 언급 없이 "일해달라"는 문자메시지로도 고용계약 성립

중앙일보

입력

서울중앙지법 민사19부(부장 오재성)는 성모(57)씨가 D엔지니어링사를 상대로 "고용 약속하고 지키지 않아 월급을 받지 못했다"며 낸 소송에서 "회사가 성씨에게 총 27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14일 밝혔다. 재판부는 회사 관계자가 "도와달라"는 문자메시지 등을 종합해 "보수와 고용기간이 명시되지 않아도 고용계약이 체결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성씨는 2011년 7월 D사의 인력모집 광고를 보고 지원했다. 면접을 거쳐 입사제의를 받았지만 급여가 적어 거절했다. D사는 이듬해 1월 다시 성씨에게 전화해 '연봉 2040만원, 근로계약 1년'을 조건으로 제시하며 입사해달라고 제안했다. 성씨는 "최소 연봉 3500만원을 주지 않으면 입사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D사는 1년 후인 지난해 2월 다시 성씨에게 연락했다. "당장 사람이 부족하니 우리 회사에서 일을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성씨는 다른 회사에 근무하고 있었지만 옮기기로 결심하고 "지금 회사를 그만 둔 뒤 출근토록 하겠다"고 답했다. 이에 D사는 대외비인 업무 관련 자료를 성씨에게 보여주고 해외 출장을 위해 여권도 전달받았다.

하지만 이후 성씨가 회사에서 나와달라는 날보다 하루 늦게 출근하겠다고 하자 "계획된 업무에 차질이 생겨 채용이 불가능하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성씨는 "D사가 고용계약을 이행하지 않았다"며 소송을 냈다. D사는 "구체적인 근로조건 등에 관해 약정하지 않아 계약 자체가 무효"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전에도 D사가 수차례 고용계약 체결을 요청했고, 업무요청 문자메시지를 보냈다"며 "성씨가 이에 응하면서 고용계약이 성립된 것으로 인정된다"며 성씨의 손을 들어줬다.

또 "보수 및 고용기간을 명시적으로 약정하지 않았어도 관례에 따라 지급하고, 고용기간은 언제든 해고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이같은 사정만으로 계약이 성립되지 않았다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2012년 성씨가 "최소 연봉 3500만원을 줘야한다"고 답한 것을 근거로 '근로기간 1년, 연봉 3500만원'의 조건의 고용계약이 성사된 것으로 봤다. 재판부는 "성씨가 D사 취직을 위해 기존 회사를 그만둔 뒤부터 직업없이 지내다 다른 직장에서 근무하기까지 걸린 9개월여간 급여를 지급해야한다"고 봤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