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콩가루 두부'개발에 20년 바친 '두부 박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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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창업보육센터 사무실에서 두부 제조법을 연구하고 있는 이진우씨. 신인섭 기자

"처음엔 돈을 벌기 위해 시작했고 그 다음에는 투자한 돈이 아까워 오기로 버텼습니다. 70세를 앞둔 지금은 죽기 전에 괜찮은 일 하나 해놓고 가는 것 같아 그냥 기쁠 뿐입니다."

이진우(67)씨는 '두부 박사'다. 평생을 두부 연구에 바쳤다. 그는 요즘 평생 동안 개발한 두부 제조 기술로 세계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다음주엔 생애 처음으로 미국에도 간다. 지난해 창립한 그의 회사 ㈜소이젠 미국 법인을 방문하기 위해서다. 공동생산.판매 계약을 한 미 아이오와 주정부 관계자도 만나볼 계획이다.

두부와의 인연은 태어나면서부터라고 했다. 어머니 젖이 부족해 콩물과 두부를 먹고 자랐다.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그곳의 한 두부공장에서 30여년간 일했다. 본격적으로 두부 연구에 뛰어든 것은 20여년 전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유산으로 받은 논밭과 집 등 전 재산을 정리해 인천에 공장을 차렸다. 콩을 가루로 빻아 두부를 만드는 '신개념 두부 공장'이었다.

"콩가루로 두부를 만드는 것은 모든 두부제조업자들의 꿈입니다. 두부를 만들기 위해서는 10시간 이상 콩을 물에 담가둬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40%의 영양분이 빠져나가고 불린 콩을 두부로 만들 때 반 이상이 비지로 버려져요. 때문에 콩을 가루로 만들어 두부를 만들 수 있다면 원가가 적게 들고 오폐수 배출까지 거의 없어 남는 장사가 되지요".

하지만 2000여년 동안 전해 내려온 두부 제조기술을 업그레이드 하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수분과 지질이 많고 열에 약한 콩의 특성 때문이었다. 콩가루로 만든 두부는 쉽게 풀어졌다. 게다가 보건복지부에서는 '두부는 콩물로 만드는 것'이라는 규정을 들어 판매마저 금지시켰다.

"시작할 땐 1~2년이면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죠. 수없는 실패를 거쳐 신 기술을 개발하는데 20년이 걸렸습니다."

지난해 6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창업보육센터 안의 10평짜리 사무실에서 그의 꿈은 이뤄졌다. "꿈인가 생시인가 했어요. 제품 맛을 본 며느리가 '아버님,이렇게 맛있는 두부는 처음이에요'하더군요."

좋은 일은 겹친다고 했던가. 지난해 네 건의 발명특허를 얻었고, 네 건의 실용신안을 등록했다. 국제특허협력조약(PCT) 연맹의 기술심사 평가에서 A(최첨단)급 기술로 인정도 받았다. 미국 아이오와주가 공동개발 및 판매에 관한 제의를 해왔으며 한국발명진흥회에서는 30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국내 굴지의 두부.간장 제조업체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두부는 콩을 가는 과정에서 나온 콩물로 만드는 것'이라는 보건복지부 규정도 2년 전 바꿔냈다. 콩가루로도 두부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납득시키기 위해 10여 년간 해당 부처 공무원들과 수많은 언쟁과 법적 공방을 거친 결과였다.

그가 두부 연구에 빠져 있던 지난 20여년간 아내가 작은 음식점을 하며 2남2녀를 공부시켰다. 그의 아내와 아이들은 요즘도 두부를 먹지 않는다고 했다. 두부가 자신의 남편.아버지를 빼앗아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가족들에게 너무 미안했는데 이젠 조금씩 나를 이해하는 것 같아 너무 기쁩니다."

박혜민 기자 <acirfa@joongang.co.kr>사진=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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