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한 김상기 씨 예금 86억 유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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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은행고객이 맡긴 거액의 예금을 유용, 갚을 길이 없자 4월 19일 자살한 조흥은행 명동지점 전 차장 김상기씨(39·원진 프로모션 대표)의 유용 액은 모두 2백65건에 86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4일 현재 은행감독원·검찰 합동으로 정밀조사 중인 김씨의 유용 액은 당초 조흥은행이 밝혔던 9억6천만 원의 9배가되고 이에 관련된 조흥은행 대리 급 행원만도 5명임을 밝혀 내고 이들의 재산을 압류하는 한편 김씨가 근무했던 명동지점장 고병찬씨(현 본점 영업2부장)등 2명을 무더기로 본부 대기 발령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김씨와 결탁 또는 묵인 사례가 드러난 원대한 전면수사에 착수키로 했다.
지금까지 밝혀진 조사에 따르면 김씨는 4년 전 중앙지점대리로 근무할 때부터 소공동 대리·개봉동 차장·명동차장 등을 거치면서 월 3%정도의 뒷돈을 주기로 하고 사채 등을 끌어들여 가공인 이름으로 예금한 뒤 예금주 몰래 예금을 꺼내 썼으며 뒷돈은 은행 몰래 예금통장으로 지급했다는 것이다.
김씨의 유용 액이 이처럼 늘어난 것은 김씨가 은행예금이 거의 3개월 정기예금으로 최종만기가 7월 중순(김씨 자살 일은 4월19일)에나 돌아오는 데다 거의 대부분이 사채자금으로 추정돼 예금주가 선뜻 은행에 나서기를 꺼리다 최근 들어 거액 예금주들이 은행에 찾아와 현금지불을 요구하기에 이르러 조사함으로써 드러났다.
김씨와 관련돼 지난달 말까지 은행창구에 제시돼 지급한 예금 청구 액은 19억 원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유용한 예금의 대부분이 사채자금인데다 뒷돈 조로 받은 통장이어서 원장에 기재되지 앓은 가공통장이 많아 예금주의 신분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예금 청구 액의 증가와 함께 포기규모도 상당액에 달할 것으로 보이는데 어느 지점의 경우 32억 원의 통장을 제시한 예금주가 국세청의 중과 세를 두려워한 나머지 예금 27억 원을 포기할 뜻을 밝혀 은행이 물어줄 돈은 훨씬 줄어 55억 원 선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4월24일 임재수 당시 조흥 은행장은 김상기씨가 유용한 예금은 모두 9억6천만 원이며 김씨의 부인 신문자씨 소유로 되어 있는 박애원·원진 선박과 부동산 등을 처분하면 약 7억 원을 회수할 수 있어 은행손실액은 2억∼3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고 밝힌 바 있다.
경찰이 조흥 은행으로부터 고소장을 접수한 것은 지난 달 10일.
고소장은『조흥은행 명동지점차장 김상기가 고객의 예금 돈 9억6천만 원을 유용한 경위를 조사해 달라』는 타이프지 한 장의 간단한 내용이었다.
대검에 접수된 이 고소장은 서울지검 특수 부로 배당되었고 이명재 검사가 수사검사로 지명되었다.
그러나 검찰로서는 사건의 주인공인 김상기씨가 죽음으로써 공소권이 없게 되었고 자칫 검찰의 어떤 결점이 앞으로 예상되는 예금주들의 민사소송의 근거가 될 소지가 있어 재무부에 자체정밀감사를 의뢰했다.
비록 주범은 죽었으나 감사결과 은행내부의 결탁 또는 묵인 사례가 드러나고 은행측의 고발이 있을 경우 즉각 수사에 착수하겠다는 게 검찰 측 입장.
이철희·장영자 부부 어음사기사건에 관련, 구속된 전 조흥 은행장 임재수씨는 이사건의 피해액을 줄여 상부에 보고하고 보안을 위해 동분서주하다 어음사기사건에 걸려 자신이 구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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