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전과에 그 사생활로 어떻게 그런 요직을 차지했었는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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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금 신문은 귀중한 지면을 이른바 장 여인사건에 관한 보도와 해설기사로 메우고 있다.그만큼 이 사건이 중대한 것이라고 하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재 정신을 차리고 볼일이 있다. 먼저 이 사건에서 장녀인의 사생활의 이상한 속사정을 들추어서 흥미거리로 만들어서 독자가 사건 본래의 문제점에서 어느덧 빗나가 버리게 되어서는 아니되리라고 하는 점이다. 하기는 그러한 점에 관해서도 독자는 관심이 있고 이사건과 관계된 사사로운 일은 까발려 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문제는 사건의 초점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다. 이 사회에 막대한 피해를 안겨 준 장본인들의 치부가 벗겨지고 그들이 창피를 당하는 것을 보고 속시원히 욕이라도 한마디 하는 것도 서민으로서는 답답한 심사를 속풀이 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일은 그저 구경거리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서민의 답답한 심사를「속풀이」하는 것만으로 그쳐 버릴 일이 아니다. 결코 그렇게되어 버릴 수 만은 없다. 이 사건에서 특정인 몇 사람이 망신을 당하고 얻어터지고 하는 것만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바로 이 점을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한다.
다음에 신문에 나는 것을 보면 이사건의 주역이 장 여인에서 그의 남편 이씨로 바뀌고있다는 점을 주목하게 된다. 사건의 주역이나 시말이 달라지고 있다고 하겠다. 어째서 그렇게되는지 속사정이야 알 도리가 없다. 다만 신문 독자의 입장에서 볼 때에도 이 사건은 그간에 수사가 개시된 이래 몇 차례 그 결과가 보도되었다. 국회에서도 관계장관이나 그 밖의 인사들을 출석시켜 어지간히 따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간에 신문·잡지가 이 사건으로 온통 뒤덮여 오고 있는데, 주역이 바뀌게되고 있다. 주역이 바뀌는 것 자체야 사건의 내막에 따른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세 번째로 생각할 일은 장녀인의 남편 이씨에 관한 문제다. 이씨가 주역으로 등장하면서 그가 전과자이고 사생활에서도 이러저러한 추문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 점이 소상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씨는 알려져 있는 대로 이 나라에서 아주 중요한 공직을 지낸 사람이다.
여기서 공직을 거쳤다고 하는 자체를 따지는 것 보다. 그러한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공직에 있을 수 있었는가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 때에는 몰랐다가 지금에 와서 비로소 그런 행적이 밝혀지게 되었는지, 또는 그 때에는 그런 것 쫌은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지금에 와서 이 사건의 주역이 됨으로써 그런 일을 따지게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점은 아주 솔직한 의문이다.
또 한편으로 먼저도 말했듯이 이씨·장 여인 부부의 이상하고 잘못된 과거나 사생활이 이사건의 실마리를 푸는데 관계가 있겠지만, 문제는 그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사건의 핵심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서민들은 궁금해하고 또 당국자도 바로 그 점을 밝히려고 애를 쓰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초점을 어디에 어떻게 맞추는가 하는 것이 분명해질 법도 한 것이다.
우리 서민은 당장 벼락부자가 되길 꿈꾸는 사나운 욕심을 가지고 살고 있지는 않다.
대부분의 사람은 정상적으로 자기 할 바를 하며 귀찮은 일을 당하지 아니하고 밥이나 먹고살면 고맙게 생각한다. 당장에 떼돈이 굴러 들어오는 일을 생각할 수 없고, 좀 천진하고 요행수를 걸어보는 사람이라야 복권을 사놓고「돼지 꿈」을 꾸기 바라는 정도가 보통이 아닌가? 자기 할 도리를 하는 사람이 모범시민이라고 까지는 못해도 정상적인 시민이라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왜 그러한 말을 하느냐 하고 물을 이도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들 마음에 찬물을 끼얹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함께 이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자 애를 쓰고 있다. 반드시 어려운 고비를 넘겨야 한다. 그렇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지 이 고비를 제대로 넘길 수 있을까. 다른 무엇보다 국민은 진실을 알고싶어 한다고 하는 아주 평범한 상식을 다시 확인하자. 다른 뾰족한 묘책이 있기에 앞서 진실을 드러내는데서 어떻게 하든 실마리를 풀게되는 것이 아닐까?
지금 우리는 이 사건으로 경제는 물론 여러모로 어려움을 겪고있다.
서민에게 있어서 당장 부엌살림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이기도 하지만 그것 못지 않게 걱정스러운 일은 많은 분들이 말하듯이 서민에게 안겨준 좌절감이나 배신당한 듯한 허탈감이다,
이점은 아주 무서운 것이다.
마음에 응어리진 상처를 하루 빨리 치유하는 것이 큰일이라고 하겠다.
흔히 자조적인 말로『몇 천억원 대가 돈이지, 몇 백만원이 문제냐』하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하는 우리 서민으로서는「몇 백만원」은 커녕「몇 만원」이 당장 아쉬운 사람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까지 대부분의 서민이 그것을 원망하며 살아온 것은 아니다. 남보다 못하게 살고 남보다 고된 일을 하는 것에 한을 두고 있는 것도 아니다. 자기 나름으로 땀흘려서 떳떳하게 벌어서 남에게 크게 아쉬운 소리하지 아니하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살아오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을 우리는 깊이 생각하는 바가 있어야 한다. 특히 사회에서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나 남보다 혜택을 누리는 입장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더욱 그러하다고 하는 것은 다시 말할 것도 없다.
매달 받는 월급봉투에서 갑근세를 원천징수 당하면서 정직하게 일하고 살아가는 서민들에게 안겨 준 마음의 상처를 하루 빨리 낫도록 해주어야 한다. 퇴근길에 딸기나 토마토 몇 근을 사면서 몇 십원을 깎고 몇 백원 때문에 속을 태우는 그들에게 안겨준 좌절감이나 배신 당한데서 오는 허탈감을 씻어주기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이점 우리 모두가 함께 걱정할 일이다.(한상범)<동국대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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