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규씨의 시 『가척의 노래놀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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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예술가는 한 시대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작품을 통해 그 시대에 부여하는 사람입니다. 그 시대가 그것을 받아들이길 싫어하더라도 힘차게 부여해야 합니다.
예술가는 또 그 시대가 결핍하고 있는 이미지도 제시해야 합니다.』
시인 황동규씨는 자신의 이같은 예술가론을 그의 다음과 같은 작품에서 구체화시키고 있다.
「그건 난해한 사랑이다 / 난해한 사랑이다 / 전피수갑 낀 손을 내밀면 / 언제부터인가 / 눈보다 더 차거운 눈이 내리고 있다」
『태평가』란 제목의 시 중 이 마지막 귀절은 앞의 우리의 삶이 냉전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자연스러운 삶이 차단되고 그것이 우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와 연결되면서 시대의 이미지를 「눈보다 차거운 눈」으로 표현한다.
작품 『들기러기』에서는 우리시대에 결핍된 이미지, 우리의 꿈이 그려져 있다.
휴전선 근처인 곳에서 시인은 「사면에서 싸움의 자세로 깃 높이 펴고 / 교미하는 들기러기들 / …포신 높이 쳐든 / 155mm포의 구애자세를…」이라고 읊고 있는데 「교미하는 들기러기」 「구애자세의 155mm포」 등의 표현은 분단의 아픔을 넘어선 민족의 앞날에 대한 꿈이 그려져 있다.
지난 58년부터 시인으로 활동하면서 『어떤 개인 날』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삼남에 내리는 눈』 등의 시집을 내놓은 중견시인인 황씨는 『시는 삶을 총체적으로 보고 삶에서 인간다운 아름다움을 찾으며 인간끼리 서로 껴안는 상태를 위해 노래해왔다』고 말한다.
황씨는 『우리는 사회·민족의 일원으로서 가지는 집단무의식이 있으며 시인은 그것을 드러내 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 의미에서 황씨는 요즈음의 시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가지고 있다.
『많은 시들이 사회·가족·친구관계 등등의 일에 대해 「뻔한 일이다」는 생각아래 빈정대거나 요설체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사회와 자아와의 대화가 아닙니다. 시대상황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그 속에서 깊이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또 너무 의식을 앞세운 시도 「시로서의 힘」을 잃어버릴 우려가 있다는 것.
황씨는 데뷔 초에는 내면의 세계를 그리고 『태평가』 이후에는 사회로의 관심을 보이는 시를 썼다. 그러나 그의 시에 일관하여 나타나는 것은 「사랑의 시」다. 『사람에 대한 사랑이 남녀간의 사랑으로 표현되는 것 같다』는 황씨는 우리모두가 껴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사랑의 시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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