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원칙 무너지면 안전도 무너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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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김명균 국민대
경영대 교수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꼭 199일만에 여야가 특별법 제정에 합의했다. 아울러 정부조직법도 개정돼 해양경찰청과 소방방재청은 신설 국민안전처 소속으로 통합하기로 하는등 ‘안전한 나라’ 구축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의 의지가 어느때보다 강하다.이로써 범국민적 차원의 사고 원인 규명과, 정부 조직 재구성을 통한 재난 대응 능력의 기초를 마련하는 일은 큰가닥을 잡았다. 그럼 이제 우리 국민은 과거보다 안전해졌고, 세월호와 같은 불행한 참사는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착잡하다.

 세월호 참사가 수습되기도 전에 우리 국민들은 고양버스터미널 화재, 장성 요양병원 화재, 판교 테크노밸리 환풍구 덮개 붕괴 사고 등 대형 참사들을 또다시 목도해야만 했다. 외국 언론들은 되풀이되는 한국의 인재형 참사를 앞다투어 긴급 타전하면서 한국의 잇단 대형 참사는 느슨한 규정, 법규 위반에 대한 가벼운 처벌, 안전 문제 경시 등에 기인한다고 비아냥거리고 있다.

 실제로 모든 사고에는 원인이 있고, 그 원인도 잘 살펴 보면 표면적인 원인과 그 속에 숨겨진 고질적이고 뿌리깊은 근본 원인이 있다. 세월호 참사만 해도 급격한 방향 전환이 배의 균형 상실과 전도를 유발한 직접적인 이유이지만 그 이면엔 무리한 과적과 안전 수칙 무시의 일상화가 자리잡고 있다.

 생명과 재산의 안전은 구호나 이벤트성 대책 남발한다고 확보되는 것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어떤 것도 안전을 우선할 수 없다는 단호한 원칙과 제도 준수, 그리고 사회적 경각심을 유지하는 것이다. 안전 원칙 준수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정해진 법에 따라 대형사고를 일으킨 주체에 엄중한 책임을 묻는 일이다. 정부는 지난해 7월 국내 항공기의 샌프란시스코 공항 착륙 사고 이후 항공안전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운항정지 적용 범위와 수위를 대폭 강화한 처벌 방침을 밝힌 바 있다.

 특히 관련 당국은 세월호 참사 이후 항공사 최고경영진(CEO)들을 소집해 항공사고나 안전규정 위반 사례가 발생할 경우 과징금 대신 운항정지 위주의 강력한 처분을 내리겠다고 거듭 강조하였다.

 그러나 최근 상황은 이런 원칙이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법에 따른 엄정한 처분이 차일피일 미뤄지는 조짐이 나타나는 것은 물론, 일부 정치인들과 단체들까지 나서 관련 참사에 대한 관대한 처분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중대한 인명 사고에 대한 경각심은 온데간데 없고 국민 편익, 혹은 국가적 손실같은 명분과 논리가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국민적 의지를 꺾으려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

 대형사고는 분명 없어야 하지만 만에 하나 비슷한 비극이 생기면 어떤 기관이라도 엄격한 제재와 법적 책임을 물어 인명 중시와 안전 우선이란 원칙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게 정부의 책무다. 온정주의와 로비에 밀려 정부 스스로 안전 주의 원칙을 훼손하는 것 아닌지 국민들은 걱정스런 눈길로 지켜보고 있다.

김명균 국민대 경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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