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다 웃다 80年] 46. 주먹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 MBC '웃으면 복이와요'에서 후배 코미디언 이기동씨(右)와 함께 연기하고 있는 필자.

TV의 위력은 막강했다. 몇 번 전파를 타자 길거리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달랐다. 공연을 직접 본 사람들이나 공연계 사람들에게만 이름이 알려졌었다. 특히 지방에선 순회공연을 하지 않을 경우 알아보는 사람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TV가 나오면서 확 달라졌다. 어딜 가든 "배삼룡이야, 배삼룡"하며 나를 알아봤다.

그렇게 한창 인기를 끌 때였다. TV에 출연하면서도 가끔 지방 공연을 했다. 대부분 노래와 코미디를 섞은 쇼였다. 전남 목포에서였다. 우리는 3박4일 일정으로 쇼를 올릴 계획이었다. 공연 첫날이었다. 갑자기 분장실에서 "우당탕탕!"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대 스태프가 내게 달려왔다. "배선생님, 큰일 났어요." "무슨 일인데?" "글쎄, 글쎄, 주먹패들이 분장실에…" 그는 숨을 헐떡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분장실로 뛰어갔다. 내부가 엉망이 돼 있었다. 머리를 짧게 깎은 주먹패 10여 명이 배우들을 에워싸고 있었다. "배 선생님, 살려주세요." 무명 배우 하나가 내게 외쳤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는 팬티만 걸치고 있었다. 그리고 벌거벗은 몸은 온통 페인트 범벅이었다. 주먹패들은 내 앞에서 그 배우를 계속 괴롭혔다. "야, 너 아주 특이하게 생겼다. 그게 얼굴이야? 차라리 동물원에 가는 게 더 낫겠는데."

나는 고함을 질렀다. "도대체 뭐 하는 짓이야!" 그들은 내게 고개를 돌렸다. "아하, 말로만 듣던 배 선생이시군. 조용히 말할 때 고분고분하게 있는 게 좋을 걸." 그는 손에 든 각목으로 바닥을 툭툭 쳤다.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즉시 사무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수동식 전화기를 돌렸다. "목포경찰서. 경찰서장 대시오. 나요? 배삼룡이요." 잠시 후 경찰서장이 전화를 받았다. 나는 호통을 쳤다. "도대체 목포 치안이 어떻게 된 겁니까. 공연장까지 주먹패가 들이닥치고, 배우를 희롱하는 게 목포의 치안입니까?" 경찰서장은 화들짝 놀란 듯했다. 그는 자초지종을 듣더니 "즉각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5분쯤 지나자 "애애애~앵"하고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기동타격대가 출동한 것이었다. 주먹패는 찍소리도 못하고 손이 뒤로 묶인 채 경찰서로 끌려갔다. 하지만 일부 단원들은 걱정하는 눈치였다. "이러다 보복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요?"

소문은 빨랐다. 목포는 물론 서울까지 순식간에 쫙 퍼졌다. 내용은 이랬다. "배삼룡의 파워가 대단한가 봐. 글쎄, 목포에서 경찰 기동타격대까지 불렀다는군." "뒤가 든든하다는 소문이 많아." 목포 주먹패들의 태도도 돌변했다. 정식으로 사과받은 것은 물론이다. 그 다음 공연부터는 귀빈 대접을 받았다. 목포 공연 때마다 주먹패들은 나를 요릿집으로 불렀다. "형님"이라고 부르며 깍듯하게 대접해줬다. 곤욕을 치렀던 그 배우는 "이젠 목포가 가장 마음 편한 공연지가 됐다"며 즐거워했다. 그는 나중에 이름만 대도 알 만한 톱스타가 됐다.

배삼룡 코미디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