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이 경쟁력이다] 양송이 최대 단지 보령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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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 냉풍을 활용해 재배한 양송이 버섯. 폐갱도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이 버섯발육에 적합한 온도를 유지해줘 고품질의 양송이가 수확된다. 양광삼 기자

▶ 냉풍욕장을 찾은 관광객들이 길이 200m의 터널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피서를 즐기고 있다. 양광삼 기자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던 폐광에서 '돈바람'을 캔다. 1980년대 후반까지 충남 제1의 탄전지대였던 보령시. 92년을 마지막으로 47곳의 보령지역 탄광이 모두 문을 닫은 뒤 이 탄광에서 나오는 차가운 바람을 이용, 지금은 전국 제1의 양송이 재배단지로 탈바꿈했다. 조그마한 아이디어 하나로 150농가가 연간 92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 검은 진주(석탄)에서 하얀 보석(양송이)으로=4일 오후 2시 충남 보령시 청라면 의평리 성주산 자락. 이희영(54)씨가 운영하는 양송이 재배사(비닐하우스)에 들어서자 온몸에 냉기가 느껴진다. 안의 온도계는 12도를 가리키고 있다. 30도를 오르내리는 외부와 무려 18도나 차이가 난다. 재배사 안에는 하얀 양송이가 탐스럽게 자라고 있다. 주위를 둘러봐도 에어컨은커녕 선풍기조차 없다.

바람은 재배사로부터 100m 정도 떨어져 있는 폐갱도(廢坑道)에서 끌어온다. 깊이 5km의 갱도에서는 연중 11~14도의 자연 냉풍이 불어온다. 냉풍은 갱도 바깥 공기가 따뜻한 여름철에는 갱 안에서 밖으로 바람이 나오고 겨울에는 반대로 바깥 바람이 갱 안으로 유입되는 대류현상 때문이다. 이런 원리를 이용해 이씨는 1년 내내 버섯 재배사 온도를 적정 생육 온도인 15~18도로 유지한다. 이씨는 재배사 4개 동(棟)에서 연 평균 3000여만원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그는 "양송이를 길러 아들 3형제를 모두 대학까지 보냈다"며 "폐광이 돈벌이 수단이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 바람이 돈이다=폐광에서 양송이 재배를 시작한 것은 1992년. 보령시 농업기술센터 기술보급과 박성규(56) 계장과 배근석(53) 농업지도사 등 2명이 아이디어를 냈다. 91년 여름 농가에 영농지도를 나갔다가 성주면 성주리 폐갱구 앞 느티나무 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폐갱도에서 나오는 바람이 무척 시원하다고 느꼈다. 이들은 냉풍을 활용하면 여름철에도 버섯재배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했다. 또 폐광으로 일자리를 잃은 5000여 명의 광부와 가족들의 일자리 창출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생각했다. 재배 작목은 느타리보다 비싼 양송이로 결정했다. 이들은 양송이 재배사업계획서를 작성, 당시 보령군에 군비 2000만원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담당 직원들은 "산골에서 무슨 버섯을 키우느냐"며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시장과 간부 공무원 등을 끈질기게 설득, 당초 요구액의 25% 수준인 500만원을 받아냈다.

예산이 확보되자 주로 광부 출신 주민들에게 양송이 재배를 권했다.이 가운데 당시 성주면의 복영호씨가 가장 먼저 나섰다. 92년 3월 복씨는 기술센터 지원예산에 개인돈 500만원을 보태 60평짜리 버섯재배사에 양송이를 기르기 시작했다. 4개월 뒤 폐광 냉풍 양송이가 처음 생산됐다. 박 계장 등은 군수.군의원.주민들을 대상으로 양송이 평가회를 열었다. 모두 기존 양송이보다 품질이 우수하다고 입을 모았다.

냉풍으로 버섯을 기른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농가가 참여했다. 농가수는 95년 60 가구에서 2004년엔 150농가로 꾸준히 늘었다. 이들 농가의 절반 이상은 광부 출신이다.

지난 한 해 동안 이들 농가는 전국 생산량의 15%인 2800t의 양송이를 생산, 9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농가당 평균 소득은 3000여만원에 달했다.

◆ 냉풍 양송이는=냉풍으로 버섯을 재배하려면 우선 폐갱도 입구에 비닐하우스 형태로 냉풍을 끌어오는 터널(폭 2.7m.높이 2.3m)을 만든다. 길이 100~200m인 냉풍유도터널 중간 중간에는 직경 60cm 정도의 구멍이 뚫려 있다. 갱도에서 나온 바람은 이 구멍을 통해 버섯재배동으로 들어간다. 풍속은 초속 6m로 나뭇잎이 날릴 정도다. 이 바람은 버섯재배에 최적인 70~80%의 습도를 머금고 있다.

1개 갱구에서 10~16개의 버섯재배동에 바람을 공급해준다. 이 지역 농가는 5월부터 10월까지 냉풍으로 양송이를 기른다. 양송이는 종균 접종부터 수확까지 45~60일 걸리며 수확량은 60평당 연간 7000~8000kg이다. 보령시 농업기술센터는 96년 냉풍 양송이 재배기술 특허를 따냈다.

냉풍 양송이는 대당 500만원 정도인 냉방기와 전기료를 절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냉방기를 이용해 키운 것보다 육질이 단단하고 빛깔도 곱다. 가격도 일반 양송이에 비해 5~10% 더 비싸고 생산량도 10%이상 많다. 8년째 양송이를 키우고 있는 오종민(51.청라면 라원2리)씨는 "냉풍 양송이는 수도권 소비자들로부터 인기를 끄는 지역의 대표적 고소득 작물"이라고 말했다.

보령=김방현 기자 <kbhkk@joongang.co.kr>
사진=양광삼 기자 <yks2330@joongang.co.kr>

여름철 피서객에 무료 개방

길이 200m 냉풍욕장

냉풍은 양송이 재배 이외 다른 곳에도 유용하게 쓰인다. 보령시는 96년 청라면 의평리 성주산 자락에서 양송이를 기르는 농가들이 이용하는 냉풍유도터널(길이 200m)을 냉풍욕장으로 개조했다. 유도터널에 출입구를 만들고 바닥에 시멘트 포장을 한 것이다.

유도터널은 7~8월 두달간 개방한다. 한꺼번에 2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냉풍욕장에 들어가면 땅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바람 때문에 2분을 견디기 힘들다. 보령시는 대천해수욕장 등 보령지역을 찾은 피서객들에게 냉풍욕장을 무료로 개방한다.

최근 이곳을 찾은 주부 김연희(38.경기도 수원시 영통구)씨는 "욕장 안에 들어갔더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며 "무더위를 식히는 데 최고"라고 말했다.

냉풍욕장을 찾아가려면 서해안고속도로 대천IC에서 빠져나와 청양 방면(36번 국도)으로 가면 된다(041-934-5959).

이와 함께 시는 냉풍을 끌어들인 창고에 보령지역에서 생산된 쌀(일명 찬바라미)을 저장하고 있다. 섭씨 13~14도가 유지되는 창고 속에 쌀을 보관하면 1년 내내 신선도를 유지해 햅쌀 같은 밥맛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시는 또 냉풍창고에 보령시 남포면에서 생산되는 포도로 만든 와인을 숙성시키고 있다.냉풍창고는 와인 숙성에 필요한 적정온도가 유지돼 별도의 시설이나 비용이 들지 않는다.

올해 말부터 와인에 '포동주'란 상표를 부착, 750㎖ 한 병에 1만원씩 팔 예정이다.

김방현 기자

냉풍 활용한 생산마케팅 돋보여
전문가가 본 성공포인트

보령 냉풍양송이는 최악의 위기에서 눈 돌려 새로운 가능성을 찾은 혁신사례다.

냉풍 양송이 재배는 냉풍과 냉수를 이용하자는 단순한 아이디어가 출발점이었다. 그리고 아이디어를 실천에 옮긴 열정을 가진 공무원과 주민들이 있었다. 행정과 주민의 협력이 빚어낸 작품인 셈이다.

행정은 기술을 개발하고 시설비를 지원하며 가능성을 타진했다. 생산이 자리 잡히기 시작하면서 주민들은 품앗이로 일을 도와가며 협력하기 시작했다. 연구회를 만들어 재배기술을 토론하고 선진지를 견학하며 경쟁력을 키웠다. 자연냉풍을 이용한 양송이 재배에는 원가절감 이상의 고급화와 차별화 노력이 있었다. 재배농민들은 등급별로 분류해 다양한 소비계층을 공략했고, 독자적인 출하 시스템을 갖췄기에 시장에서 최고급 버섯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여기에 냉풍욕장이라는 휴식공간을 조성하여 명소로 만들었다. 냉풍으로 지역을 명소로 만들어 입소문을 내고, 여기에 명품인 양송이를 함께 판매한다는 전략이다. 흔히 아무것도 없다고 쉽게 포기하는 지역이 많지만 눈 돌려 보면 자원이 될 만한 것은 너무나 많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폐광과 양송이의 결합'은 혁신이다. 혁신이란 지극히 새로운 뭔가를 창조해 내는 것이 아니다. 그저 기존의 요소들을 전에는 누구도 적용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결합시키는 것이다.

강신겸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www.tourla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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