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작곡가 쇼스타코비치 탄생 100주년 앞두고 국내외 기념공연 릴레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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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작가 외르크 슈타이너의 단편 소설 '쇼스타코비치 음악에 춤추는 사람'(2000년)에서 주인공은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무척 좋아한다. 그는 여름밤 매일같이 자기 집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친구와 함께 쇼스타코비치 음반을 볼륨을 한껏 높인 채 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한밤중에 경찰 두 명이 들이 닥쳤다. 이웃에서 신고를 해왔단다. 한 명이 앰프 볼륨을 줄여달라면서 무슨 곡인지 물었다. "쇼스타코비치. 러시아 사람이죠." 그러자 그는 동료 경찰에게 "러시아 작곡가래. 자네도 사회주의자 맞지?" 경찰들도 겉옷을 벗어 던진 채 포도주를 함께 마셔가며 음악을 실컷 들었다. 오전 3시가 되어서야 기분 좋게 일어섰다. 이튿날 주인공이 이웃에게 사과하러 갔더니 뜻밖의 반응이 나왔다. 음악이 시끄러워서가 아니라 주인공과 친구가 창문 끝에 앉아 있어 떨어질까봐 신고했다는 것이다. 쇼스타코비치 음악은 클래식 마니아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쉽게 감동을 준다는 얘기다.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쇼스타코비치는 국내에서 거의 들을 수 없었다. 공산권 국가의 작곡가였기 때문이다. 82년 작곡자의 아들인 막심 쇼스타코비치가 서울시향과 함께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5번'을 연주해 화제를 모았고, 83년 같은 작품이 예프게니 므라빈스키(1903~88)의 녹음으로 국내에 라이선스 발매됐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85.사진)의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벌써부터 기념 연주회가 즐비하다. 러시아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상트 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 음악총감독)는 키로프 오케스트라와 로테르담 필하모닉과 함께 뉴욕 링컨센터에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전15곡을 연주할 계획이다. 게르기예프는 런던 바비칸홀에서도 2006년까지 런던 심포니와 교향곡 전곡을 연주한다. 에사 페카 살로넨 지휘의 LA 필하모닉, 쿠르트 마주어 지휘의 프랑스 국립 교향악단도 교향곡 전곡 연주에 도전장을 냈다.

미국 출신의 에머슨 4중주단은 내년 4월 27일~5월 14일 뉴욕 앨리스 털리홀에서 쇼스타코비치의 현악4중주 전 15곡을 연주할 계획이다. 맨해튼 4중주단도 뉴욕과 도쿄에서 전곡 연주 시리즈를 선보인다. 하루에 전15곡을 한꺼번에 연주하는 마라톤 콘서트도 예정돼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는 2005~2006년 시즌 협주곡 레퍼토리로 쇼스타코비치를 골랐다. 10월 런던필(지휘 쿠르트 마주어)의 내한공연에서 이 곡을 연주하며 사이먼 래틀 지휘의 베를린필과 녹음한 쇼스타코비치 협주곡 음반도 함께 출시한다. 드미트리 키타옌코 지휘의 KBS 교향악단이 11월 24, 25일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11번 g단조 '1905년'을 연주한다. 키타옌코는 카프리치 레이블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전곡 녹음을 진행 중이다.

군포시 문화예술회관의 상주단체로 활동 중인 프라임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쇼스타코비치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기념 공연을 한다. '축전 서곡''첼로 협주곡 제1번''교향곡 제5번 d단조' 등 쇼스타코비치의 작품만으로 프로그램을 꾸몄다. '교향곡 제5번'은 초연 당시 객석이 눈물 바다를 이루면서 기립 박수가 40여분 계속되었던 작품이다. 창원시향 상임 지휘자 장윤성씨가 지휘봉을 잡고 KBS 교향악단 수석주자로 있는 첼리스트 김우진씨가 협연한다. 23일 오후 3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031-392-6422.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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